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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면 율릉리 이기홍묘소(嚴政面 栗陵里 李箕洪墓所)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엄정면 율릉리 이기홍묘소(嚴政面 栗陵里 李箕洪墓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5. 12. 11. 15:22

 

이기홍의 묘지가 있는 율릉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율리(栗里)와 능리(陵里)에서 ‘율(栗)’자와 ‘능(陵)’자를 따 ‘율능(栗陵)’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엄정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주군 엄정면 율리·능리·노곡리(蘆谷里)·태산동(台山洞)이 통합되어 율능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고, 1995년 1월 1일 중원군이 충주시와 통합되면서

충주시 엄정면 율능리가 되었다.

 

이기홍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기주(箕疇), 자는 여구(汝九), 호는 직재(直齋).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 이숙(李熟)이며,

어머니는 군수(郡守) 송현(宋鉉)의 딸이다.

 

이기홍은 이지겸(李之謙)·송준길(宋俊吉)·송시열(宋時烈) 등에게 배웠다. 과거에 응시하지 않다가 47세 때인 1687년(숙종 13) 학행으로 효릉참봉에 천거되어 임용되었다. 1689년(숙종 15) 사포서별검(司圃署別檢)에 전직되었으나 사임하고 나가지 않았다. 그 해 스승인 송시열이 제주로 유배가게 되자 동문 40여 인과 함께 이를 변론하다가 죄를 얻어 회령에 유배되었다. 회령에서 5년간 후진 교육을 하다가 1694년 시강원자의(侍講院諮議)로 복직되었다.

 

이듬해인 1695년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로 승직되었으나 사은만 하고 사퇴하였고, 이듬해 서연관(書筵官), 지평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1697년에 통천현감과 청풍부사를 잠시 역임하였다가 이듬해 장령에 전임되자, 인주치도(人主治道)에 관한 소만 올리고 사퇴하였다. 그 뒤 연풍(延豊)[현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에 내려가 문산(文山)에 수락정(壽樂亭)을 세워 그곳에 살면서 권상하(權尙夏)와 함께 경사(經史)를 강론하였으며, 화양동 등 사문(師門)의 유적을 찾아 스승 송시열의 언행을 기록하여 남겼다.

 

저서로는 『자성편(自省編)』·『위학적방(爲學績方)』·『직재집(直齋集)』 등 10권이 있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율릉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