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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동 임성업신도비(楓洞 林成業神道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풍동 임성업신도비(楓洞 林成業神道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2. 28. 15:21


충청북도 충주시 풍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인 임성업의 신도비이다.

풍동(楓洞)은 과거 달천 남쪽 구릉 지대에 단풍나무가 많아 이 지역을 단풍골이라 불렀다. 이 단풍골을 한자로 표현하면서 풍동이 되었다.

그리고 달천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오면서 마을 이름도 상풍, 중풍, 하풍이다.

국도 3호선 변의 풍동 능골마을 입구에는 높이 20여m, 둘레 330㎝의 느티나무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에 임정환 공덕비와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철제 난간을 쳐서 임성업 신도비를 보호하고 있다. 난간에 페인트 도색등이 필요하다.



임성업()은 무과에 등과하여 이괄의 난에 출전하였는데, 아우인 임승업(), 충민공() 임경업(), 임준업()과 함께 참여하여 안현전투에서 뛰어난 전공을 세웠다. 그 뒤 병자호란 때에도 종횡으로 분치()하여 전력을 다하였으나 권간()들의 방자한 횡포에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고향에 돌아와 일생을 마쳤다.




임성업의 묘도()에 비가 없어 후손들이 비를 건립하기로 하였으나 350여 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 문헌이 없고 고증할 만한 것이 없자 가장()에 근거하여 11대손 임병운()이 글을 지어 1980년 4월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비제는 12×12㎝의 해서체로 ‘증통훈대부 군자감정 평택임공휘성업신도비()’라 음기되었고, 본문은 3×3㎝의 단정한 국한문혼용체로 음기하였다. 내용은 평택임씨의 시조인 임팔급()부터 부친 임황()에 이르기까지의 내력을 기록하고, 이후 임성업의 활동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였으며, 그 자손들의 활동상도 언급하고 있다. 더불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와중에 충민공 임경업의 비운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다. 말미에는 최근 들어 임성업 신도비를 건립하게 된 연유를 써놓았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