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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면 이곡리 김태용선생송덕비(沙梨面 梨谷里 金泰鏞先生頌德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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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면 이곡리 김태용선생송덕비(沙梨面 梨谷里 金泰鏞先生頌德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4. 9. 14:11


사리면 화곡리 지금은 폐교된 화곡국민학교앞에 있는 김태용선생의 송덕비입니다.

김태용선생 송덕비 옆에는 화곡국민학교 설립에 힘을 보탠 이태호선생의 송덕비도 나란히 어깨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김태용선생은 사리면 신촌마을에서 태여났으며

무의무탁한 주민을 돌보아주며 죽은뒤에는 그들을 위하여 묘지까지 희사하기도 하였다.사회사업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어린이놀이터 부락민들의 공동쉼터등 본부락뿐 아니라 인근부락의 진입로 부락안길의 농로등을 위하여 토지를 희사하였다,

신촌마을및 인근마을의 발전을 위하여 많은 열정과 금전을 희사한 선생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비석을 마을 초입에 세웠습니다.



김태용(金泰鏞)의 생몰년은  1905(고종 42)~1972년 이다.
자는 한웅(韓雄), 호는 농세(聾世), 본관은 안동으로 안렴사(安廉使)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용증(金龍曾)이다. 타고난 성품이 너그럽고 기개가 강직하여 주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일찍이 개화에 눈을 떠 지역 내에 후학들이 공부할 학교가 없어 배우지 못하고 있는 점을 걱정하였다.

이에 사리면 이곡리(梨谷里)에 사는 이태호(李台鎬) 씨를 찾아가 논의하니 그가 사재(私財) 1백석지기를 희사하였다. 김태용도 현금 오천 원을 내놓아 이
태호씨가 희사한 대지 1,220평 위에 3개의 교실을 신축하여 1944년 학교를 세웠다. 1946년에 화곡국민학교 부형회 회장을 맡았었다. 이렇듯 육영사업(育英事業)에도 공헌했으며, 종사랑전위참봉(從仕郞典衛參奉)으로 괴산향교 전교(典校)를 지냈다. 그의 덕행과 인망은 유림인들의 추앙을 받았다. 1960년 6월 12일 화곡국민학교(禾谷國民學校) 동창생 일동과 지방 유지들이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송덕비(頌德碑)가 학교 앞에 있다.
【참고문헌】 『괴산군지』 «동아일보» 1940. 3. 20.



비석의 전면에는 김태용선생송덕비(金泰鏞先生頌德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비의 후면에는 김태용선생의 행적과 내역등이 적혀있습니다.

비석의 건립년도는 단기 4293년(1960년)에 동창회 이름으로 건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