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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읍 화곡리 김호묘지(周德邑 花谷里 金鎬墓地)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주덕읍 화곡리 김호묘지(周德邑 花谷里 金鎬墓地)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6. 16. 08:31


충주의 풍산김씨입향조인 김호의 무덤입니다.

김호의 무덤은 그의 장남인 김극충의 효자문위에 얕은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묘역에는 신,구비석 각1기씩과 문인석 상석 향로석 장명등등을 새로 만들어 세웠다.무덤은 호석을 두르고 있으며 고양공묘소면례기(高陽公墓所緬禮記)라 하여 작은 표지석을 세웠습니다. 비석에는 통훈대부행고양군수휘호지묘배숙부인청송심씨부좌(通訓大夫行高陽郡守諱鎬之墓配淑夫人靑松沈氏袝左)라고 음기되여 있습니다



풍산김씨 유래와 충주 입향조는 다음과 같다.
시조(始祖) 김문적(金文迪)은 안동부의 풍산현 사람으로 고려조에 벼슬이 판상사(判相事)로 풍산백(豊山伯)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풍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게 되었다. 풍산김씨 충주파 시조의 휘(諱)는 호(鎬)이며 관은 내직 통훈봉상시정이며 외직은 군수이다. 그는 시조(始祖) 문적의 13세손이다.
그의 名祖는 6대조 고려 봉익대부 삼사 좌윤 휘 안정(安鼎)이고 그의 아드님 휘 자량(子良)인데 고려조의 시중이고 조선조에서 5조의 판서를 역임한 후 대제학을 배명받았고 고조는 종해(從海)로 생원이며 증조는 술산(述山)이며 기묘사화에 절사(節死)했고 조는 순로(舜老)로 성균관 생원이고 부는 원길(元吉)로 안변교수이며 모는 밀양 박공진사 박세번의 여식이시다.



호는 어려서부터 효심과 우애심이 극진했고 서화담 선생 문하에서 공부하여 을묘년(1555)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조선조 화담 서경덕 문인록에등재되어 있다. 그후 임술년(1562)에 다시 과거에 합격, 여러 현, 군의 성실하고 근면한 관리로서 이름이 높았고 귀임 후에는 거사비 등이 세워졌다. 1593년에는 고양군수로 나갔다가 다음해 노환으로 파직하고 돌아와 충주 덕련리로 전 가족을 인솔하고 낙향하여 강도사건으로 요양중 별세했다. 공은 1526년 7월 23일에 출생하여 1594년 3월 29일에 졸하니 향년 69세이다. 처음 장지는 괴산이었으나 1602년에 이안의 번릉산의 창학포란형에 이장했으며 배위(配位)는 청송 심씨이다. 3남이 있는데 장남은 극충이며 목숨을 바쳐 부친을 구한 대효로 영조때 정려를 받아 사헌부 집의에 추증되었고 차남은 극방(克邦)이며 통훈 상의원직장이고 3남은 극가(克家)로 절충장군 용양위부사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