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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읍 삼청리 단군전(周德邑 三淸里 檀君殿) 본문
먹벅골의 동쪽 언덕에 있습니다. 1984년에 이 마을의 학자 원용선이 세우고 단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전각 앞에 “조선개국단군성모비(朝鮮開國檀君聖慕碑)"가있다. 해마다 양력 10월 3일 개천절(開天節)에 제를 올립니다.
단군전의 정면 우측에 단기 4281년에 조성되었고, 비문은 ‘조선개국단군성모비’(朝鮮開國檀君聖慕碑)라고 음각된 방형대좌의 옥개형의 비이다
단군전옆에는 큼지막하게 입간판이 있습니다. 주덕읍 유도회 임원들의 전화네요.
단군전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전화를 드리면 아마 정확한 안내를 받을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1946년 원용덕이 어래산에 자비로 건축한 후 1952년 현 위치로 이축한 사당으로 단군성조의 영정(1,5×2m)을 봉안하여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배향하고 있다. 숭령전은 서향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구획하였으며, 가구(架構)는 삼량(三樑)집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에 단청을 하고 있다.
단군전은 1995년 숭령전, 제실증수, 2000년 삼문, 홍살문 건립하였다.
삼청리 주덕단군전건립실기(三淸里周德檀君殿建立實記)인심 좋고 살기 좋은 이곳 누구나 두루 덕을 받고 잘산다는 천하대지의 넓은 곡창지대 “주덕(周德)” 땅에 태고의 우리민족에 대한 성조 단군왕검의 슬기롭고 높으신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거룩하신 건국이념과 “경천숭조사상(敬天崇祖思想)”을 길러 배달민족의 번영과 자주정신을 함양하여 민족정기(民族精氣)를 배양한다면 구심점(求心點)이 되어 혼란을 막아 자주독립 복지국가로서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높은 뜻을 품고 살아오신 한문의 학자이시며 선비의 도를 다하여 오신 “원용선(元容璿)”씨는 충주시 주덕읍 삼청리 묵동마을에 거주하여 오면서 자나 깨나 노심초사 동분서주하며 투철한 애국애족의 구국정신을 염원해 오시던 중 모든 여건이 가장 어려운 중에도 마침내 크고도 큰 성스러운 용단을 내려 단기 4278년(서기 1945년)에 국조 단군성지심(國祖檀君聖慕之心)으로 이곳 묵동 마을 높은 뒷산 태조 임금이 배극렴 대감을 찾아 세 차례나 거동했다하여 임금어자, 올래자, “어래산(御來山)”이라고 명명된 산에 “묘좌유향(卯座酉向)”에 대지를 잡아 “조선독립기념비(朝鮮獨立紀念碑)”를 봉건하여 비문 전면에는 위에 “태극”을, 그리고 아래는 “천제단”이라 새겼으며 후면에는 “단군 4288년 정해 3월 3일 길일”이라 새겨 “상축국운, 하제창생”으로 했으며 그 후 이어서 무자년 5월 5일에 “조선개국 단군성모비(朝鮮開國檀君聖慕碑)를 봉안하여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대제를 봉행해 왔다.
그러나 참여하는 노령의 유림들이 높은 산중 험로에 원거리라 너무 불편하다는 원성이 있어 건립 13년만인 단기 4294년(서기 1961년)에 당시 충청북도지사 조대연(趙大衍)씨의 배려로 중원교육청에서 시공 토목공사업자 김태철(金泰喆)씨가 100,000환에 낙찰 받아 현재 위치 주덕읍 삼청리 산 24-1번지에 단군전을 이축하여 동년 9월 15일에 완전히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서기 1968년도에 창설자 원용선씨가 세상을 하직하시니 창설 23년간 심혈(心血)을 다하여 정성껏 모셔왔었다.
그 후 그의 장남 원정희(元貞熙)씨가 계승하여 제전을 봉행하였으나 시국이 마치동족상쟁(同族相爭)의 비참한 6·25 전란의 영향으로 민생고가 도탄에 빠져 있는 차제에 생계가 매우 어려워 막대한 고통을 겪고 있어 매년 행사에 경비조달이 어려운 실정임으로 당시 묵동 마을 리장 최상복(崔相福)씨와 주덕면장 황성섭(黃晟燮)씨가 앞장서 취지문을 제작 선포하여 주민을 설득하고 단군전 수호를 위해서 삼청리 5개 마을과 신양 3구 마을 유지등 50여명이 발기회를 갖고 회측을 만들어 추진위원회를 결성함에 고문으로 국회의원 이종근(李鍾根)씨, 충주시장, 중원군수, 교육장, 경찰서장을 , 그리고 회장에는 이원영(李源永)씨, 부회장에 황성섭(黃晟燮), 김병삼(金炳三)씨, 평의원에 충주시 중원군 각면 유림, 또한 총무는 권도중(權道重)씨, 감사에 유도형(柳道馨),최상복(崔相福)씨를 선출하여 위원회가 발족을 보게되었으며 더욱 활성화를 띠게 되었다.
단군전을 다시 개보수 하였는지 음수대등도 새로 신설이 되여 있습니다.
특히나 이곳 묵동 마을 주민들은 단군전이 위치한 마을이기에 주인의식으로 리장을 중심으로 일치단결 재원확보에 솔선함은 물론 매년 단군제전 행사에도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여 손님 접대하는 것을 연중 마을의 대행사로 시행해 오고 있다.1983년 초부터 관리자 원정희 씨는 자기 소유 172평의 단군전 부지를 주덕면 유도회에 희사하여 소유와 관리권을 인계하는 미덕을 보였다.유도회 초대회장 조도연(趙道衍)씨, 부회장에 김종인(金鍾仁), 원정희(元貞熙)씨를
중심으로 150여명의 회원들이 대동단결하여 매년 단군 대제봉행에 있어 초헌관에 시장, 군수를 격년 윤번제로 해서 충주, 중원, 음성, 괴산, 제천 등의 많은 유림들이 참여해왔다.
그러나 시대가 점점 변천해감에 따라 단군전 확장의 필요성이 절실하여 수차 건의해오던 중 주덕면장 최재호 씨와 도의원 김재근 씨가 합심해서 지원을 도청에 요구했던바 마침 이 고장 출신 도청 내무국 총무과장 이종배(李鍾培)씨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1994년 12월에 8,000만원의 도비 보조금으로 12월 27일 착공 이듬해 6월 30일 준공을 보아 단군전 본전 숭령전(崇靈殿)이 32.63㎡의 목조 한옥와가 건물을 1차 공사로 완공했고, 이어서 2차 공사로 1995년도 시비 3,000만원을 보조받아 재실 17.28㎡의 목조 한옥와가를, 동년 7월 1일 착공하여 10월 28일 준공 충주시장 소유로 관리 전환을 하였다. 그리고 3차 공사로 시비 1,700만원 보조로 담장, 배수로, 계단 등 마무리 공사를 함으로써 유일하게도 우리 한반도 중앙지 옛 고장 중원경(中原京) 충주땅에 의젓하고도 우아한 단군전이 가일층 빛을 보게 되어 문화재로서의 자랑스러운 성전(聖典)이 되었기에 더욱 보람을 느낀다
이토록 3년 간에 걸친 가사불구하고 상부 관청에 출입하여 가면서 공사를 추진, 감독을 해주신 유도회 부회장 김종인(金鍾仁)씨와 본 단군전건립 실기 제작이 나오도록 창안 협조해주신 시의원 리학영(李學榮)씨에게 감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현재의 성스럽고 아담한 단군전이 이곳 우리 충주 주덕땅에 건립 보존해옴에 있어 정성을 다하여 주신 그 모든 분들에게 거듭 찬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우리 충주주덕 유도회에서는 단군전 수호관리(檀君殿守護管理)에 더욱 협조를 당부드립니다
1999. 9.충주시 주덕읍 유도회장 곽호종 백 (忠州市 周德邑 儒道會長 郭鎬鍾 白) [참조-주덕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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