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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연주리 김선덕송덕비(安南面 蓮舟里 金善德頌德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안남면 연주리 김선덕송덕비(安南面 蓮舟里 金善德頌德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9. 6. 06:25

 

안남면 연주리 마을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광산인 김선덕의 송덕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김선덕선생공덕비(金善德先生功德碑)라고 음기되여 있습니다.쇠창살로 보호책을 둘렀습니다.

 

 

 

연주리는 주암리(舟岩里)와 연지동(蓮枝同), 고성리(古城里)가 합해져 이루어진 마을이다. 향지에 나타난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1739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주암리에 63호, 고성리에 10호 등 두마을에 73호가 거주한 것으로 나와있으며 1890년 신유장적(辛卯帳籍)에는 주암리에 73호, 연지동에 5호, 고성리에 6호 등 3개마을에 84호가 모여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후 1914년 연지동의 연(蓮)자와 주암리의 주(舟)자를 합쳐 연주리라는 지명으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배바우에서 가장 오래된 문중을 찾는다면 광산김씨, 경주김씨, 초계주씨 등을 들 수 있다. 연주리를 지나기 위해선 광산김씨 문중의 땅을 밟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을 만큼 대부분의 대지를 소유하고 있다. 현재도 연주1리에는 약 1/3 정도가 광산김씨 문중 소유의 땅이다. 많은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마을의 발전을 위한 관심도 높다.

초등학교를 비롯해 면사무소, 파출소 건립을 위해 땅을 희사했으며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는 등 마을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문중이기도 하다. 특히 4대에 걸쳐 효자비와 공덕비가 세워져 있어 마을에 기여한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

 

 

 

광산김씨에서 공적비나 효행비가 세워져 있는 인물은 김용선, 김시중, 김선철, 김선덕, 김삼순 등 5명이다. 현 안남우체국장인 김동백(41)씨의 4대조 할아버지인 김용선 선생은 어머니가 온몸에 고름이 생기는 병에 걸리자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 병을 치유, 마을 입구에 효행비가 세워져 있다.

또 그 아들인 김시중 선생은 현재 안남초등학교 땅을 기증해 지역 교육발전에 기여했으며 현 우체국장의 할아버지인 김선철 선생은 안남면 민선 초대 면장을 지내며 면사무소 땅을 희사했고 안남면에 처음으로 우체국을 개설, 마을 발전에 기여했고 부모님에 대한 효행도 모범이 돼 효행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김삼순 선생은 파출소 땅을 기증하는 한편 초대 우체국장을 지내며 주민에게 정보통신의 문화혜택을 보급하는데 크게 기여하자 지난 98년 12월 마을주민들은 주민들의 정성을 모아 공덕비를 세웠다. 이밖에 김선철 선생의 동생인 김선덕 선생은 안남면에 전기를 끌어오는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김선덕 선생은 면이나 학교, 지서를 오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등 선행을 베풀어 칠순 잔치때에는 식사를 대접하지 못할 정도로 축하객이 몰려 주먹밥을 돌렸다는 얘기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문중에서 가장 먼저 효행비가 세워진 김용선 선생은 옥천이 수해로 큰 피해를 입자 곡식을 풀어 주민을 구제, 도움을 받은 주민들은 하계리에 세워진 마을 자랑비에 그의 선행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 함께 김동백씨도 지난 99년 12월 준공된 안남 파출소에 자비로 80여 평의 땅을 매입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땅과 함께 기증하는 등 선행을 베푸는 문중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이처럼 마을을 위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는 광산김씨 문중은 모두 고향을 떠나고 지금은 5가구만이 거주하고 있을 뿐이지만 문중에서 행한 선행은 주민들의 가슴속에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