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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연주리 봉화금씨절부비(安南面 蓮舟里 奉化琴氏節婦碑) 본문
봉화금씨는 초계주씨의 집안으로 시집을 와서 일찍 남편을 여의고 절부의 도를 다하여 절개를 지켰다.
비석의 전면에는 절부봉화금씨지비(節婦奉化琴氏之碑)라고 새겨져 있다. 안남면 연주2리 독락정앞에 초계주씨의 비석들과 같이 세워져 있다.
봉화(奉化)는 경상북도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금씨(琴氏)의 본관은 봉화 외에도 계양(桂陽)·강화(江華)·안동(安東)·평해(平海)·문화(文化) 등이 문헌에 전해지고 있으나 모두가 봉화금씨의 분파이다.
봉화의 옛 이름이 봉성(鳳城)인 까닭에 봉성금씨라고도 하였으나 현재는 봉화금씨로 일원화되었다. 시조는 기자와 함께 우리나라에 온 금응(琴應)의 후손으로 고려 초의 삼한공신인 태사 금용식(琴容式)이라고 한다.
그러나 금응으로부터 금용식까지의 계보를 추적할 수 없고 또 금용식 이후로도 6세 내지 8세의 세계가 실전되어 금의(琴儀)를 1세조로 하고 있다. 금의는 금씨 성을 쓰는 인물 중 우리나라 역사와 문헌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물이다. 중시조 금의의 묘소는 김포의 봉황산(鳳凰山)에 있으며 1727년 봉화의 하눌재(下訥齋)에 단을 모아 향사하고 있다.
봉화금씨는 경상북도 일대 및 충청북도 옥천, 전라남도 담양과 영암, 경기도 용인과 강화에서 세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봉화금씨 『계해보(癸亥譜)』에 의하면 윗대는 실전되어 추적할 수 없고, 10세 금우공(琴遇工)의 대를 전후해서 봉화군 상운면 일원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였는데 이 가운데 13세 금미(琴美)의 후손은 충북 옥천군으로 옮겨가 살았다.[네이버 지식백과] 봉화금씨 [奉化琴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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