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안내면 인포리 증약찰방허직선정비(安內面 仁浦里 增若察訪許稷善政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안내면 인포리 증약찰방허직선정비(安內面 仁浦里 增若察訪許稷善政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9. 26. 08:23


일명 빨래판비석이라고 불리우는 찰방(察訪)을 지낸 허직(許稷)의 선정비입니다.선정비의 크기는 38*47*12센티입니다.

허직의 선정비는 마을앞 비석거리에 있었고 비문에는 행찰방허공직(行察訪許公稷)으로 토막나 상단만 남아있었습니다.

2002년 옥천군 안내면 인포리 화인마을에서 빨래판으로 사용되다가 발견되였습니다.현재는 안내면 향토전시관에 전시되여 있습니다.


"충북민속문화재의 해"를 맞아 2012년 6월부터 2개월간 경복궁국립민속박물관과 청주국립박물관, 충주박물관에도

각각 2달씩 전시된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허직(許稷)은 조선 후기의 문신입니다.
허직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거주지는 개령(開寧)이었다. 아버지는 허좌(許佐)이고, 할아버지는 허돈(許暾)이며, 증조부는 허박(許璞)이다.

1861년(철종 12) 식년 문과의 병과(丙科) 1위로 급제하여 승정원의 가주서(假注書)가 되었으며, 1862년(철종13년) 청주에 있는 율봉역(栗峰驛)의 찰방(察訪)을 지냈다. 1865년(고종 2)에는 예조정랑(禮曹正郞)을, 1866년 사헌부 지평(持平)을 지냈다.

1867년 사헌부 감찰(監察)로 재직중에는 명륜당(明倫堂)과 비천당(丕闡堂)에서 열린 식년시(式年試)에 시험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870년에는 사간원 정언(正言)을 지냈고 1872년에 자인현감(慈仁縣監)에 제수되어 외직으로 나갔다.


[청주시 율량동 율봉공원에 있는 율봉역 찰방 허직의 선정비]



[보은읍 학림리에 있는 율봉 찰방 허직의 선정비입니다]






증약역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옥천군내에는  증약역(增若驛)과 가화역(嘉化驛), 토파역(土坡驛), 순양역(順陽驛), 화인역(化仁驛) 등 5개가 있었고 이중 증약역이 전국에서 40개밖에 안되는 찰방역으로서 기능을 했다. 증약찰방이 나머지 4개 역을 다스렸던 것이다.

찰방이 파견되었던 증약역은 옥천에 있는 역을 관리한 것 뿐만 아니라 충청도의 22개 역을 관리했던 큰 역이었다. 세조실록에 충청도 각 역의 총 관리를 증약 찰방이 맡도록 한 기록이 보인다. 세조6년(1460)2월 5일자 조선왕조실록에 전해지고 있다.


역(驛)은 공문서의 전달이나 관리들의 왕래와 숙박 등의 편의를 봐주고 관물(官物)이나 공물의 수송을 돕기 위한 기관으로 신라 소지왕 때부터 시작되어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까지 그 구실을 했다. 조선시대 들어 세조 3년에 역 제도를 정비했다. 이때 고려 때까지 불렀던 몇 개의 역을 합해 관리했던 역승(驛丞)을 찰방(察訪·종6품)이라고 고치고 전국 538개의 역을 관리하기 위한 40개의 찰방역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