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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량면 대전리 전주이씨묘역(東良面 大田里 全州李氏墓域)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동량면 대전리 전주이씨묘역(東良面 大田里 全州李氏墓域)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9. 28. 06:36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마흘마을에 조성되여 있는 전주이씨 임영대군파의 묘지이다.

묘지의 하단에는 효자였던 이시진의 효자비가 자리하고 있으며 모선재(慕先齋)라 이름하여 재실이 자리하고 있다



대전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대야리(大也里)와 황전리(黃田里)에서 ‘대(大)’자와 ‘전(田)’자를 따 ‘대전(大田)’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동량면(東良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야리·황전리·사천리(沙川里)·배일리(排日里)·마흘리(馬屹里)가 통합되어 대전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고, 1995년 1월 1일 중원군이 충주시와 통합되면서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가 되었다.


대전리의 북쪽에는 용천산[293.3m]이 솟아있어 산척면과 경계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낮은 산으로 이어지면서 여러 구릉지대가 형성되어 있어 밭농사와 논농사가 발달되어 있다. 사천마을 앞으로 지나는 대전천(大田川)이 서쪽으로 흘러 남한강에 흘러들고 있다. 느렁골저수지와 풍무골저수지가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대전리 내동사지, 최개국 신도비, 최승 신도비, 최성환 송덕비, 충주 연안이씨 쌍효각, 여정비, 쌍효비, 효자 이시진비, 이시진 효자문, 최홍사비 등이 있다. 서쪽으로 국도 19호선이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이시진(1578∼1633)은 조선시대 「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 기록된 효자로서 국가로부터 정려를 받은 인물이다.

이시진 묘소(李時振 墓所)는 17세기 전반부터 20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전주이씨 임영대군 효자공파 6세손인 이시진 묘부터 13세손인 이명규 묘까지 조성되어 있다. 墓域은 구릉의 능선을 따라 李時振 墓, 李晩栽(이시진의 장자) 墓, 李世彦(이만재의 장자) 墓, 李億齡(이세언의 장자) 墓, 李顯昌(이억령의 장자) 墓, 5대에 걸친 직계 장손들의 묘소가 차례로 조성되어 있다. 李鶴齡(이세언의 차자) 墓, 李濟弘 墓, 李思遠 墓, 李明圭 墓 등 방계 후손들의 묘도 함께 있는데 능선부에서 약간 비켜 조성되어 있다.

5대묘는 봉분과 석물(상석, 혼유석, 향로석, 석비, 망주석 등)을 갖추고 있으며 상석과 혼유석, 향로석 등은 조성당시의 석물이며 석비와 망주석은 대개 2003년 종중에서 일괄 건립한 것이다. 이시진, 이제홍 묘 석비는 당시의 것이다.


이시진 묘에는 石碑(2점), 望柱石, 魂遊石, 床石, 香爐石 등을 갖추고 있으며 석비 1점은 2003년에 건립하였으며 망주석도 이때 세운 것으로 보인다.
무덤은 평면 사다리꼴 형태이며 가로 6m, 세로 6m, 높이 1.5m정도이다. 부인 전주 황씨와 풍산 심씨를 합장하였다. 李時振(1578~1633)은 全州李氏 臨瀛大君派 6세이다.



부호군을 지낸 이만재 묘는 이시진 묘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床石, 魂遊石, 香爐石(이상 조성 당시), 石碑, 望柱石(이상 2003년)등을 갖추고 있다. 무덤의 형태는 평면 사다리꼴에 가까우며 가로 5.2m, 세로 8m,높이 1.6m정도이다. 분묘 조성 당시 석비를 세우지 않고 상석 前面에 ‘折衝將軍 行 龍驤衛副護軍 全州李公 晩栽之墓 配 淑夫人 坡平尹氏 祔左 癸坐’라 刻字하였다. 李晩栽는 이시진(1625~1705)의 장자이다.지금의 석비는 2003년종중에서 일괄 세웠다.



이세언(1646∼1708) 묘는 이만재 묘 아래에 위치한다. 床石, 香爐石(이상 조성 당시), 石碑, 望柱石(이상 2003년)등을 갖추고 있다. 무덤의 형태는 평면 삼각형에 가까우며 가로 5m, 세로 6.5m, 높이 1.5m정도이다. 분묘 조성 당시 석비를 세우지 않고 상석 前面에 ‘成均進士 全州李公 世彦之墓 配 公人 竹山朴氏 祔左 癸坐’라 刻字하였다. 李世彦(1646∼1708)은 이만재의 장자이다.



 李鶴齡(이세언의 차자) 墓이다



이억령 묘는 이세언 묘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 床石, 香爐石(이상 조성당시), 石碑, 望柱石(이상 2003년)등을 갖추고 있다. 무덤의 형태는 유돌 분이며 직경 4m, 높이 1m정도이다. 분묘 조성 당시 석비를 세우지 않고 상석 前面에 ‘通仕郞 全州李公 億齡之墓 配 孺人 金海金氏 祔左癸坐’라 刻字하였다. 李億齡(1672∼1722)은 이세언의 장자이다.


이현창 묘는 이억령 묘 우측 아래(이학령 묘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2009년 부인 밀양박씨와 합장하면서 봉분을 재 조성하였다. 상석, 혼유석, 향로석, 석비, 망주석 등을 갖추고 있다(2009년 건립). 봉분은 유돌분으로 직경 3m, 높이 1.2m 정도이다. 李顯昌(1695∼1771)은 이억령의 長子이다.



李濟弘 墓, 李思遠 墓, 李明圭 墓 등 방계 후손들의 묘도 함께 있는데 능선부에서 약간 비켜 조성되어 있다.

무덤밑으로는 전주이씨 임영공파 재실인 모선재가 자리하고 있으며 좌우로 노송이 자리하고 있다.묘역은 후손들에 의하여 잘관리되고 있다.[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