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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면 상삼리 장수황씨장천 매당묘원(賢都面 上三里 長水黃氏葬阡 梅堂墓苑) 본문
현도면 상삼리 꽃동네대학교안에 위치하고 있는 장수황씨의 묘원입니다.매당묘원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수황씨는 전라북도 장수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시조는 황경(黃瓊)이다.
1723년(조선 경종 3)에 편찬된 《장수황씨세보(長水黃氏世譜)》에 따르면,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부마(駙馬)이며 시중(侍中) 벼슬을 지낸 경(瓊)이다. 경은 한국 황씨의 도시조(都始祖)로 알려진 락(洛)의 둘째 아들인 을고(乙古)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지만, 오늘날 장수황씨 문중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경 이후의 세계(世系)가 한동안 실전되어 공유(公有)의 손자 석부(石富)를 1세조로 한다. 조선시대의 4대 명상(名相)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희(喜)는 석부의 증손자이다. 그는 24년간 정승을 지냈으며 그중 18년간 영의정을 지내면서 농사의 개량과 예법의 개정, 서얼의 천역(賤役) 면제 등 치적(治績)을 쌓았다.
희의 아들 가운데 치신(致身)은 중추부판사 등을 역임하고 우의정에 올랐고, 수신(守身)은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9세손 열(悅)의 아들인 정욱(廷彧)은 이조판서·예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광국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시와 서예에도 뛰어났다. 17세손 기(璣)의 아들 경원(景源)은 대제학을 비롯하여 이조·예조·공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이밖에 문장과 서예가 뛰어났던 맹헌(孟獻)·여헌(汝獻)·효헌(孝獻) 3형제가 유명하고, 선조 때 일본에 다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내침(來侵)을 예고한 윤길(允吉), 숙종 때의 학자로 의학뿐 아니라 지리에 정통하여 《여지도(輿地圖)》를 만들고 《지도연의(地圖衍義)》를 저술한 엽(曄), 순조 때의 명신 승원(昇源), 한말의 우국지사로 《매천야록(梅泉野錄)》을 지은 현(玹) 등을 배출하였다. 장수황씨[長水黃氏] (두산백과)
애국지사 황갑수(별칭-황인덕)1921.6.30 ~ 2009.8.18)는 장수인으로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광복군에서 활동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충남 연기군에서 태여 났으며 1990년에 거눅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일명 황인덕(黃仁德)이라고도 한다. 1921년 충청남도 연기군에서 태어나 전의공립보통학교와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 중앙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 경제학부에서 공부하다가 1944년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후난성[湖南省]으로 끌려갔다. 신병 훈련을 받은 뒤 작전지역에 투입되자 강학진·김상학 등과 함께 탈출하여 중국군 루청지구[汝城地區] 유격대에 편입되어 활동하였다.
1945년 2월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창설요원으로 선발되어 후난성 창사지구[長沙地區] 파견대장으로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귀국한 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광복군동지회 상임이사 등을 지냈으며, 2002년 6월부터 사망할 때까지 광복회 경기도지부장을 지냈다.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훈을 인정받아 1982년 대통령표장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4묘역(묘비번호 131)에 안장되었다.
황갑수[黃甲秀] (두산백과)
매당묘원의 기틀을 마련한 황재현의 가적비이다.일제강점기에 이 곳을 매입하여 매당묘원의 기틀을 마련하고 문중의 숭조사상과 문중의 화목을 강조하였다.
자은암(慈恩巖)입니다.
글쓴이의 조모인신 경주이씨께서 이바위에 조석으로 가정과 자손번창을 축원하시어 모두 성취하신 치성대이다.
원래의 위치는 전의 동교리 옛집에 있었으나 이 곳으로 옮겨서 영구보전 하려함이라 하는 글이 적혀있다.
장수황씨묘역인 매당묘원 밑에 자리하고 있는 일종의 관리사와 재실을 겸하고 있는 정심당(正心堂)이라는 건물입니다.
1932년 장수인 황재연이 땅이 매입하여 장수황씨의 묘원을 조성하는 기초를 만들었다. 그 후 후손인 종손 근하가 석물과 수목등에 신경을 썼다.
묘지명이라 하여 오석에 각석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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