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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면 강청리 곽은묘소(伊院面 江淸里 郭垠墓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이원면 강청리 곽은묘소(伊院面 江淸里 郭垠墓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1. 22. 21:49

 

 

 

 

찾고보면 참 쉬운데(?) 이정표 하나없는 강청리의 선산인 곽은의 재실을 찾았다는 것이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사람들이 있으면 자세하게 물어봐도 좋으련만 요즈음의 농촌에는 거의 사람을 볼수가 없다. 곽은재실을 접근할수있는 길이 두군데가 있는데 두군데 모두 개인의 사유지인 마당을 통과해야 하니 남의 마당을 차를 몰고 지나간다는 것은 애초부터 생각도 못했으니 당연히 찾을수가 없었다. 곽은재실은 지금 공사가 한창이다.문화재 화재시 소화용수를 저수할수있는 소화저수조를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소화저수조를 만들고 그 앞에 석축등을 쌓아 주위환경과 어울리는 공사를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문화재 보수라든가 또는 진입로 등의 공사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을수 있도록 입간판 같은것도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강청리 어디에도 곽은재실을 알리는 입간판을 구경을 하지 못했으니 작은것에 신경을 쓴다면 더 좋치 않을까 한다.  

 

작년에도 찾지 못해서 이번에도 혹여나 하고 다시도전을 했는데 미리 길을 파악한후 주인집의 양해를 구하고 사유지인 마당을 통과하니 번듯한 길이 있다. 곽은 재실은 그 길 마지막에 자리하고 있었다.이리 쉬운것을 ....

개들이 많기도 하다 6마리나 되는 개들이 우루루 달려든다. 마음약한 분들은 조심하시길 바랍니다.재실을 지키시며 생활을 하시는 분을 만나 이것저것 용촌선생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수가 있었다. 커피에 기르던 닭알까지 주시고 이 곳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곽은 묘지는 곽은재실에서 약30여미터 떨어져 있다. 문인석 2점에 후보된 상석과 호석을 둘렀으며 소박하다는 표현이 맞을것이다 비가 일기 자리하고 있는데는 글씨는 잘알아볼수가 없다. 곽은의 묘지 위에는 곽은의 부인인 평산신씨의 묘지가 자리하고 있다. 평산신씨 묘소도 비가 일기자리하고 있으며 호석(護石)은 후보(後輔)하였다  

 

곽은선생의 묘갈은 묘소에서 약 1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자연석을 대좌삼아 세월을 깁고 있다. 묘갈에는 평산신씨와 곽은의 묘갈임을 밝히고 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총알에 많은 흔적이 보이지만 상태는 아직 양호하다.

 

무덤이 2기 있는데 위의 묘지는 곽은의 부인인 평산신씨의 묘지이며 곽은의 묘지는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곽은(郭垠)은 조선전기의 문인이다. 본관은 선산()이고, 자는 안부()이며, 호는 용촌()이다. 청주 출신이며, 아버지는 곽기(), 어머니는 진자기()의 딸 진주지씨()이다. 할아버지는 곽수원(), 증조할아버지는 곽윤성()이다. 부인은 대사성()을 지낸 신자승()의 딸 평산신씨이다.

 

1472년(성종 3) 춘장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검교()로 등용되었으며, 그해 정조사(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81년에 지평이 된 뒤 헌납·전적·장령을 거쳐 1484년에는 전설사수()가 되었다. 그 뒤 왕의 특명으로 담양부사로 나가 부역을 경감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조정에서 그의 치적을 높이 평가하여 승지로 승진시켰으나 부임 도중에 죽었다.

 

 

 

그가 죽자 부민들은 크게 비통해하였으며 오래도록 기신제()를 지냈다. 절의에 바르기로 유명한 남효온()도 그 죽음을 슬퍼하는 글을 지어 후세에 남겼고, 율곡() 이이()[1536~1584]도 그의 자손을 현인의 후예라 하여 등용할 것을 주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