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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면 강청리 곽은재실(伊院面 江淸里 郭垠齋室) 본문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강청리에 있는 묘하재실(墓下齋室)입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43호 입나다. 조선 전기의 문신 용촌(龍村) 곽은(郭垠, ?-?)의 묘소를 관리하고 묘제(墓祭)를 지내기 위해 선산곽씨 문중에서 세운 재실이며 건축으로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 수 없다. 재실의 남서쪽에 곽은과 부인 신씨(申氏)의 묘소가 있고, 묘역 앞에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묘갈이 있다.
곽은(郭垠)의 본관은 선산(善山)이고, 자는 안부(岸夫), 호는 용촌(龍村)이다. 1472(성종 3)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교검(承文院校檢)이 되었으며, 그해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81년(성종 12)에 사헌부 지평이 된 뒤 공조정랑, 첨정, 장령 등의 관직을 거쳤다. 외직으로 담양부사에 임명되었을 때에는 부역과 조세를 경감하여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런 치적을 인정받아 승지로 승진되었으나 부임 도중에 죽었다. 이에 백성들이 비통해하며 기일에 쌀을 모아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재실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一자형 건물로 남향하고 있다. 서쪽부터 부엌 1칸, 안방 2칸, 마루 1칸, 건넌방 1칸의 평면구성을 보이고 있다. 전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는데, 건넌방 앞에는 한 단 더 높게 하였다.
구조는 1고주 5량가이며, 장식이 없는 동자주와 판대공을 올렸다. 기둥 위에는 민도리 형식으로 짜올렸는데, 전면에만 원기둥을 세우고 보아지에는 쇠서를 초각하여 초익공 양식처럼 보이게 하였는데, 이는 전면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장적 수법이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형태의 기와지붕을 취하고 있다.
곽은 재실은 일반적인 충북 지역의 一자형 주거건축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전면에 다소 과장된 굵은 원기둥과 그 위에 쇠서를 초각하는 모습에서 재실건축으로서의 특징이 보이고 있으며, 같은 규모의 주거에 비해 부엌의 크기는 물론 다락, 벽장과 같은 수장공간이 비교적 작다는 특성 또한 재실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곽은재실을 찾은날은 공사가 한참이였다.
소방차의 진입이 어려운 문화재를 화재로 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자체 저수조를 확보하여 소방용수를 저장하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시멘트로 저수조를 만들고 있었는데 주위의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도록 석축으로 마무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옥천군은 나름 여러 문화재 특히 비지정문화재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지자체이다.
곽은 재실을 찾으며 조금 안타까운 면이 있다면 곽은재실의 위치를 안내하는 안내판이라도 강청리 마을에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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