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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니면 원평리 삼층석탑(薪尼面 院坪里 三層石塔)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신니면 원평리 삼층석탑(薪尼面 院坪里 三層石塔)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2. 3. 13:33

 

 

원평리사지는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 108번지에 있다. 702년(성덕왕 원년)에 창건하여 ‘선조사(善祖寺)’라 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호)과 충주 원평리 삼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5호)이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 사지 한가운데 있는 고려 전기 석탑이다.


현재 원평리 사지에는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과 석탑 등이 남아 있다. 이 사찰은 신라 선덕왕 때 창건되어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소실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이나 유적·유물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또한 이 일대에는 법흥왕 때 선조사(宣朝寺)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전하나 후대에 각색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조성된 석불과 석탑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시대에는 사찰이 창건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석탑은 석불과 거의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독특한 문양과 조각 기법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되는 석탑이다. 한편 원평리 사지 주변에는 충주 숭선사지 등 고려시대 유력 사찰들이 위치하고 있다.


고려시대 사찰이 창건 내지 중건되면서 석불과 함께 사찰 가람의 중요 신앙과 예배의 대상으로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신앙의 주요 대상인 대형 석불이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사찰 가람의 필수적인 요소로서 석탑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평리 사지의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과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다. 석탑과 석불의 위치와 방향을 고려할 때 어느 한쪽이 옮겨졌거나 둘 다 원위치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충주 원평리 삼층석탑은 현재 기단부가 비교적 잘 남아 있고, 탑신부는 3층 옥개석은 결실되었으며, 상륜부는 노반(露盤)만 남아 있다. 기단부는 자연석에 가까운 돌의 상면을 다듬어 가운데에 사각형의 홈을 마련하여 면석이 결구되도록 했다. 나름대로 석탑이 견고하게 고정되도록 했다. 기단부는 단층으로 마련되었으며, 4매의 판석형 석재를 결구하였다.

면석부 2면에는 향로를 양각하였는데, 향로는 다리가 3족이고 몸체는 원형이며 대형의 뚜껑과 화염형 장식이 있는 손잡이가 표현되었다. 이러한 향로는 통일신라 말기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 일반적으로 조성된 수법이었다. 갑석은 평박하게 치석하였으며 상면에 낮은 괴임을 마련하였다. 1층 탑신석은 좌우에 좁은 우주를 새겼으며 그 사이에 높게 돋을새김된 조각상을 양각하였다.

조각상은 사자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마모가 심하여 어떤 형상인지는 불분명하다. 만약 사자상이라면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탑신부에 사자상을 새기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불교 교리상으로도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수호신장상 같은 조각상을 새기다가 완성하지 못한 느낌도 든다. 2층과 3층 탑신석은 좌우에 좌우 너비가 좁은 우주만을 세웠다.

옥개석은 하부에 3단의 높은 받침을 마련하였으며, 낙수면은 경사가 직선형으로 치석되었다. 상륜부는 탁자형의 사각형 노반만 남아 있다. 이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간결한 치석 수법과 간략화된 경향을 강하게 보이는 고려시대 석탑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일부 부재가 결실되기는 했지만 비교적 형태가 잘 남아 있는 상태이다.
고려시대 들어와 간략화된 석탑 양식이 적용된 전형적인 석탑이라 할 수 있다. 치석과 결구 수법에서 지방적인 특색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특히 기단부 면석부에 표현된 향로는 다른 석탑에서는 보기 드문 문양에 해당되며, 고려시대 향로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1층 탑신석에 표현된 조각상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석탑에 대한 수호의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는 조각상으로 보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