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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면 법주사 미륵불상조성기념비(俗離山面 法住寺 彌勒佛像造成紀念碑) 본문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금동미륵대불을 조성할 때 그 조성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비석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미륵불조성기념비(彌勒佛造成紀念碑)라고 각자되여 있습니다.
금동이륵대불은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俗離山面) 법주사 경내에 있는 세계 최대의 단일 불상이다.
동양 최대의 미륵불 입상으로, 높이는 33m이다. 최초의 불상은 신라 제36대 혜공왕 때 승려인 진표가 청동으로 주조한 후 1000여 년 간 유지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흥선대원군이 당백전(當百錢)의 재료로 쓰기 위하여 훼손하였고, 1939년 한국 근대조각의 선구자인 김복진(金復鎭)이 당시 일제강점기 때 독립에 대한 염원을 살려, 사실주의적 기법을 바탕으로 한 그의 《불상습작》을 원형으로 하여 시멘트로 대불을 제작하였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시멘트 미륵대불을 그대로 본떠 청동대불로 조성하는 청동불상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주재로 쓰인 청동만도 116t이나 소요되었다. 당시 청동미륵대불 조성에는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을 주축으로 한 학자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17인 위원회가 5회에 걸쳐 평가회를 가졌고, 하나로 이어지는 청동불상 조성의 예가 세계적으로 없었기 때문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비철금속분야 연구진까지 참여하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부 용접 부위에 부식이 진행되면서 얼룩진 외관 때문에 불상으로서의 품위유지가 어려워지자 2000년부터 불상에 금박을 입히는 개금불사(改金佛事) 공사가 시작되었다. 총 12억 원의 자금이 들어간 공사는 표면의 이물질을 제거하고 미세한 구멍을 메꾸는 과정부터 옻칠, 금분 칠, 금박 입히기 등 8단계를 거쳐 17개월만인 2002년 6월 5일 끝났다.
순금이 총 80㎏ 소요되었고 연면적 900㎡에 이르는 겉부분에는 3미크론(0.003㎜) 두께의 금박을 입혔으며 섭씨 80℃∼-30℃에서 견딜 수 있는 건식 전기도금공법을 통해 광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특수도금하였다. 화강석으로 만든 높이 8m의 기단부 안에는 용화전이 있는데,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도솔천의 모습을 형상화하였으며 용화전 벽면에는 13개의 미륵십선도가 부조되어 있다.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法住寺金銅彌勒大佛]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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