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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물면 오성리 진강사(甘勿面 五城里 晉姜祠)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감물면 오성리 진강사(甘勿面 五城里 晉姜祠)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2. 7. 15:18






괴산군 감물면 소재지를 벗어나 처음만나는 동네가 오성리 이다.

오성리(五城里)는 뒤로는 성불산이 있고 앞으로는 넓은 들과 강이 흐르는 산간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남양골, 성골, 산지촌, 저무니, 신기, 구무정 등이 있다. 남양골은 5집밖에 없어, 오가리()라고 부르다가 현재는 오성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 되었다. 양지 바른곳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남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성골은 방골 남쪽 성불산 밑에 있는 마을로 연대미상이나 그 곳에 성이 있었으며, 현재는 그 잔해만 남아있는 마을이다. 오성이라는 명칭은 오가리와 성골의 이름을 따서 생겼다. 산지촌은 남양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연안이씨()의 산지기 집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저무니는 남양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근처에 봉등혈의 명당이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구무정은 남양골 위쪽에 있는 마을로 구멍이 아홉게 뚤린 바위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오성리 노인회관 뒷쪽에 자리하고 있는 진주강씨의 사당인 진강사(晉姜祠)이다.


사당의 이름이 진강사인 것이 아마 진주강씨의 사당의 준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강씨()의 최초 성()을 가진 사람은 중국의 염제신농()이라 한다. 한국의 강씨는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 장군을 시조()로 모시고 관향()을 진주()로 정하였다. 강이식 장군은 597년[고구려 영양왕 8] 수나라를 공격하였으며, 598년에는 5만의 군사로 임유관()에서 30만 수나라 군을 대파하였다. 진주에 강이식 장군을 모신 봉산사가 있다. 강씨가 진주에 세거하게 된 것은 고구려 멸망 후 강진()이 중국의 당과에 급제한 후 태중대부판내의령()을 역임하다가 진양후()에 봉해진 이후이다. 그 후손들이 이 지방에 정착하여 문벌을 떨쳤다. 이러한 진주 강씨는 크게 은렬공파, 인헌공파, 박사공파, 소감공파, 관서공파 등 다섯 파로 나뉘고 이후 여러 파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강()’자를 씨()로 삼는 성씨는 진주를 단일본으로 하고 있다. 진주강씨[晉州姜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