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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읍 제월리 홍명희문학비(槐山邑 霽月里 洪命喜文學碑) 본문
괴산 제월대에 있는 홍명희의 문학비입니다.제월대 주차장 한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홍명희는 호는 가인(可人)·벽초(碧初). 충청북도 괴산 출생. 어린 시절에 한학을 수학하다가 일본에 유학하여 다이세이중학(大成中學)을 졸업하였다.
문학비가 있는 제월리는 괴산읍 동부에 위치하는 농촌마을이다. 제월이라는 명칭은 둥근산이 갯가에 외따로 떨어져 있으므로 개다리 또는 제월이라고 부르다가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저드레, 능안골, 새터말 등이 있다. 저드레(聞笛)는 고산정(孤山亭) 너머에 있는 마을로 예산에 고산정에서 놀이하는 원님들의 풍악소리가 이곳까지 들렸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능안골은 제월리, 산수동, 안골이라고도 부르며 홍판서 묘가 있다고 한다. 새터말은 1936년 큰 장마 뒤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괴산의 대표 특산물인 청결고추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으며 관광농원을 이용한 주말농장, 체험농장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도지정유형문화재로 이구 판목이 있다. 이구판본은 활재 이구의 문집인 활재선생문집(活齋先生文集)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판목이다. 또한 도지정기념물로 괴산 고산정 및 제월대가 위치해 있다. 고산정은, 조선시대 후기의 정자로 충청북도 기념물 제 24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술국치 직후 귀국하여 오산학교(五山學校)·휘문학교(徽文學校)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1920년대 초반에는 한때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시대일보사(時代日報社) 사장으로 재직 중인 1927년에 민족 단일 조직인 신간회(新幹會)의 창립에 관여하여 그 부회장으로 선임되면서 사회운동에 적극 투신하였다.
1930년 신간회 주최 제1차 민중대회사건의 주모자로 잡혀 옥고를 치렀다. 1945년 광복 직후에는 좌익운동에 가담하고,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이 되기도 하였으나, 곧 바로 월북하여 북한 공산당정권 수립을 도우면서 부수상 등 요직을 거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최대의 장편소설의 하나로 손꼽히는 <임꺽정 林巨正>을 발표함으로써 문학사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은 1928년≪조선일보≫에 첫 연재를 시작한 뒤 세 차례에 걸쳐 중단되었다가, 광복 직후 미완의 상태로 전 10권이 간행되었다. 조선 중기에 지방의 도둑으로 실록에 그 행적이 단편적으로 기술되기도 한 임꺽정의 이야기를 방대하게 그려내었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 밝힌 바 있듯이, 반봉건적인 천민계층의 인물을 내세워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양식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 속에서 귀족계층의 계급적 우월성이 배격되고 오히려 천민의 활약을 당위론적인 측면에서 그려 보이고 있는 것은 작가가 지니고 있는 계급적 의식과 세계관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이 작품이 식민지 현실의 모순 그 자체보다도 봉건적인 체제모순에 더욱 비판적인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 소설에서 다양한 삽화를 처리하는 서사적 기법과 풍부한 토속어의 구사력은 조선시대 사회상과 풍속을 재현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문학적 태도를 확인해볼 수 있는 글로는 <신흥문예(新興文藝)의 운동(運動)>(문예운동, 1926.1.)이 대표적인데, 이 글에서 계급문학운동의 의미와 그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밖에도 <조선문학원류약론 朝鮮文學源流略論>(청구학총, 1931.2.)·<이조문학논의 李朝文學論議>(삼천리문학, 1938.1.) 등의 고전문학 관계 논문이 있다.그리고 <대 톨스토이의 인물과 작품>(조선일보, 1935.11.23.∼12.4.)·<문학청년들의 갈 길>(조광, 1937.1.)·<학창산화 學窓散話>(박문, 1938.12.) 등의 글이 있다. 저서로는 수필집 ≪학창산화 學窓散話≫(조선도서, 1926)와 장편소설 <임꺽정>(을유문화사, 1948)이 있다.
홍명희 [洪命憙]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역사 소설 「임꺽정」
문학이 현실에 응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식민지 시대의 작가들은 검열 같은 노골적인 방법으로 의식을 옥죄는 일제의 압박에 점점 위축된다. 현실 비판 발언은 은유나 우회적 풍자 등에 의지할 때에만 가능한 상황이 이어진 것이다. 따라서 작가들은 다각적으로 돌파구를 모색하는데, 이윽고 상상력을 옥죄는 현실에 응전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 바로 역사소설이다. 동질감이라는 정서적 토대 위에 역사 속의 인물과 공간을 끌어들이면 검열을 피하면서도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홍명희의 「임꺽정」 역시 이러한 의도와 배경 속에서 수태된 작품이다.
임꺽정은 1559년(명종 14)에 등장, 관리들과 토호 세력에 대항하여 의적 활동을 벌이다가 조정 토벌대와 치열한 싸움 끝에 포살된 실존 인물이다. 홍명희의 「임꺽정」은 『기재잡기』와 『명종실록』 등에 나오는 사료들을 축으로 하고, 여기에 다시 야담과 야사들을 섞어 버무린 장편 역사 소설이다. 홍명희는 임꺽정이 실존한 시대와 자신이 몸담은 시대는 4백 년 가까운 시차가 있지만, 여전히 지배 계층의 억압 밑에서 신음하는 민중의 삶과 현실에 내재한 모순을 눈여겨본다. 바로 이러한 모순 구조를 불가사의에 가까운 역사 속의 한 실존 인물을 내세워 보여준 것이다.
총 5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에서, 전반부인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은 화적패가 결성되기 이전인 연산조의 갑자사화부터 명종 때의 을묘왜변에 이르기까지 약 50년 동안에 있던 일들을 주로 다룬다. 후반부인 「의형제편」, 「화적편」은 다양한 출신의 하층민들이 청석골로 들어와서 화적패가 된 경위와 일곱 의형제가 조정과 양반 무리를 상대로 펼치는 활동상이 중심을 이룬다.
첫 편인 「봉단편」은 임꺽정이 태어나기 이전, 연산조 시절에 벌어진 일들을 주로 담고 있다. 홍문관 교리 이장곤은 갑자사화 탓에 유배 생활을 하던 중 도망쳐 신분을 숨기고 떠돌다가 우연히 머물게 된 고리백정의 집 딸인 봉단과 혼인한다. 이후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이장곤은 신분을 밝혀 동부승지로 천거되고, 봉단은 왕의 배려로 숙부인으로 봉해지며, 봉단의 외삼촌 임돌은 양주 소백정의 데릴사위가 되어 임꺽정을 낳는다. 한편, 양주팔은 묘향산에서 도술을 배운다.
다음 편인 「피장편」은 임꺽정이 갖바치가 된 양주팔의 집에 머물며 이봉학, 박유복 등과 사귀고 학문과 검술을 익히는 과정, 불도에 입문해 병해 대사가 된 양주팔을 따라 전국을 유람하는 과정을 그린다. 유람 도중 이황, 서경덕, 정희량 등과 만나며 조광조에게 정변을 예시하고 신비한 힘을 발휘하는 양주팔의 행적, 그리고 백두산에서 살던 처녀 운총과 결혼하는 임꺽정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어 「양반편」은 중종 말년에서 명종대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의혹에 싸인 인종의 죽음, 승려 보우를 둘러싼 불교의 부패상, 명종의 외척 윤원형이 꾸미는 갖가지 음모를 비롯한 궁정 안팎의 권력 다툼, 여기에서 비롯된 을사사화와 을묘왜변 등 혼란스러운 시대 배경 속에서 임꺽정, 이봉학, 배돌석 등이 펼치는 활약상이 소개된다.
작가의 수감과 병환으로 중단되었다가 연재가 재개된 「의형제편」에서부터 이 소설의 옹골진 재미와 진면목이 드러난다. 여기에서는 청석골 패거리가 강탈한 봉물을 선물로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다양한 출신의 하층민들이 청석골에 들어오게 되기까지의 경위를 담는다. 행랑어멈의 유복자 박유복, 빈농 출신 머슴 곽오주, 임꺽정의 처남이자 백두산으로 도망친 관노비의 자식 황천왕동, 역졸 출신 배돌석, 양반의 서자 이봉학, 가난한 소금장수 길막봉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통하여 지배층의 부패와 가혹한 수탈로 말미암은 민중의 피폐한 실상을 드러냄과 동시에 순박한 백성이 도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보여준다. 임꺽정을 비롯한 일곱 사람은 곧 의형제를 맺고, 여기에 아전 출신의 서림이 합류하여 화적패를 결성한다.
다음 「화적편」에서는 이렇게 결성된 청석골의 화적패 사이에서 임꺽정이 두령으로 추대된 이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힘이 장사인 백정 출신 임꺽정은 여러 화적 세력을 규합하고, 평안도·함경도·강원도·경기도 등지를 휩쓸며 조정에서 임명한 지방 수령들을 상대로 의적 활동을 벌인다. 임꺽정 패거리는 지방 수령들이 서울로 보내는 봉물을 중간에서 강탈하고 마패를 위조, 금부도사로 위장하여 군수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는가 하면, 관청의 옥을 부수고 동료를 구출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쳐 조정과 지방 수령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두려움에 떨게 한다.
이 과정에서 두령 임꺽정이 서울 장안의 이름난 기생집에 드나들며 기생 세 명을 첩으로 삼는 등 다소 안일한 향락에 빠지면서 청석골 화적패는 위기를 맞는다. 어느 날 기생집에 있던 임꺽정은 포교들의 습격을 받고 치열한 싸움 끝에 가까스로 빠져나오지만 세 여자는 붙잡히고 만다. 아전 출신 서림의 배신으로 평산 군수를 살해하려던 패거리는 곤경에 빠지고, 관군과 결전을 벌인 끝에 산속의 근거지로 돌아오지만 수를 늘려 뒤쫓은 군졸 무리 때문에 다시 위기에 빠진다. 이내 패거리는 청석골에서 나와 구월산성으로 근거지를 옮기는데, 갑자기 여기에서 이야기가 중단된다. 무려 12년에 걸쳐 2백 자 원고지 1만 3천 장이 넘는 규모로 쌓이던 이 대하 역사소설은 결국 미완성인 채로 막을 내린다.
의도한 대로 홍명희는 역사 소설 「임꺽정」을 통하여 지배 계층의 모순에 맞서는 민중의 힘을 당대의 거울에 비추어 옮겨놓는다. 이로써 작가는 식민지 치하에서 억압받는 기층 민중의 분노와 저항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의적의 활약상과 곤경에 빠져 허둥거리는 지배 계층을 보여주어 우회적으로 대중의 갈증을 풀어준다.
장편 「임꺽정」을 구성하는 다섯 꼭지는 한 묶음마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면서도 전체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작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부침하는 여러 왕조를 이야기 속에 담으면서 궁중의 여러 법도와 세태를 꼼꼼하게 되살려 보여준다. 게다가 출신만큼이나 각양각색인 임꺽정을 비롯한 화적들의 성격, 각 지방의 민간 풍속과 전설, 속담과 속어 등이 곳곳에 깃들여 소설의 세부를 풍성하고 맛깔스럽게 만든다. 이로 말미암아 「임꺽정」은 “한 시대의 생활의 세밀한 기록이요 민속적 자료의 집대성”, “조선 어휘의 일대 어해(語海)” “깨끗한 조선말 어휘의 노다지”라는 찬사를 듣는다. 당시 역사소설을 집필한 작가들이 흔히 현실 도피의 방안으로 잠시 나들이를 하는 데 그친 정도에 비해, 홍명희는 10년이 넘도록 오직 역사소설 한 장르에, 그것도 「임꺽정」 한 편을 위해 많은 양의 책을 읽고 자료를 수집하는 등 온갖 열정을 쏟아붓는다.
이러한 찬사와 대조적으로 임화는 「임꺽정」을 “작품을 관류하는 정열” 없이 “그 시대의 인물들과 생활상의 만화경과 같은 전개”를 보인 세태소설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한다. 하층 계급의 핵심인 농민의 삶과 생활이 소홀히 다루어진 것, 소설의 후반부에서 임꺽정이 부하들을 산채에 남겨두고 혼자 서울의 기생집에 드나들며 첩을 셋이나 두는 등 향락에 젖어드는 것, 무고한 평민에게까지 뚜렷한 동기 없이 약탈·방화·살인을 자행하여 의적과는 거리가 먼 행적을 보이는 것 등은 애초 임꺽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가의 의도가 굴절되었거나 훼손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측면은 작가가 왕조에서 편찬한 실록을 지나치게 충실히 따른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무식하고 투박하며 때로 잔인성이 드러나기도 하는 도적을 도적답게 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도식성에서 탈피, 작품에 현실감과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렇다 해도 당대 사회의 계급적 갈등과 사회에 내재한 여러 모순을 드러내려는 시도는 작가 자신의 혼돈 때문에 약화하거나 김이 빠져버린 느낌이 있다. 계급을 타파하자며 모인 화적 패거리 내부에도 또 하나의 지배·피지배 계층이 형성되고, 이는 곧 현실 세계의 강자와 약자의 모순 관계를 재생산한다. 게다가 일곱 두령급을 제외한 나머지 졸개들의 삶과 활동은 거의 무시됨으로써 임꺽정의 울분이 사회적 모순을 인식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천한 신분에서 비롯된 개인적 분노와 복수심으로 떨어지고 마는 느낌이 드는 것도 「임꺽정」의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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