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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도농리 표충사(安南面 道農里 表忠祠)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안남면 도농리 표충사(安南面 道農里 表忠祠)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4. 21. 22:37



표충사가 자리하고 있는 도농리는 원래 농막리(農幕里)라 하다가 도성(道城)과 합하여 도농리가 되었다.
1739년 여지도서에는 농막리라 하여 29호가 살았으나 1891년 신묘장적에는 52호가 살았던 것으로 되어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정비 때 도성(道城)과 농막(農幕)을 합하여 도농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농막은 약300여년 전에 마을이 형성되어 용계(龍溪)라 부르다가 농사를 많이 짓는 마을이라 하여 농막(農幕)이라 부르게 되었다. 농막에는 하동정씨(河東鄭氏), 배천조씨(白川趙氏)가 오래 전부터 살아 왔으며 마을 앞에는 사인정공시혜공덕비(士人鄭公施惠功德碑)와 하동정공병복효행비(河東鄭公秉福孝行碑)가 있다. 주변에는 청농, 시고개, 덕다리골, 안딕이재, 밤골재, 원남으로 가는 큰길 이었던 싸리재, 봉화를 올렸던 봉화둑이 있다.


도성은 마을 뒤에 삼국시대의 성터가 있어 성재라 부르다가 되재라고 불러왔는데 한자화 하면서 “되재”를 도성(道城)으로 쓰게 되었다. 되재 주변에는 성재, 밤골재, 삿갓봉, 매봉재,비루방이 있고 되재 앞 하마산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중봉 조헌선생묘소와 표충사, 중봉선생 신도비가 있고 싸리재 입구엔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농막과 소야 사이에 있는 황촌(黃村)은 장수황씨가 살기에 황촌이라 불리우고 주변에 참나무골, 불탄 터, 응국이, 마름터, 말랑고개, 구렁터, 행낭, 행계, 낙끝자리 등이 있고 마을 어귀에 1998년에 세운 청송심씨 효열비(靑松沈氏 孝烈碑)가 있고, 전주이씨 효열비가 도성마을 어귀에 위치한다.


소야는 마을뒷산 고개가 소의 형상과 같아 재의 이름도 질마재라 하고 소가 누워있는 들이라 하여 우야(牛野)라고 하다가 140여 년 전부터 소야(蘇野)라 부르게 되었다. 소야 주변에는 질마재, 세발, 안산, 말묵재, 번돈, 큰골, 꾀꼬쟁이. 끙개날, 송장나무골, 왕재, 만딩이멧날, 골냄이재, 배나무송골, 백정멧날, 깨진박골, 홍두깨날,, 호랭이굴, 광대밭골, 주골, 응고개, 중뫼산, 병풍쟁이들, 숯꽂이들, 덕공제들, 참나무쟁이들이 있으며 소야저수지는 1967년 축조되었다.



표충사의 대문인 삼문은 충의문으로 가운데 문은 높은 정문이고 양쪽의 문이 협문으로 낮은 솟을삼문 형태를 갖추고 있다. 영정각은 1단의 기단 위에 정면3칸 측면2칸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정면1칸은 퇴칸이며 민흘림기둥이고, 기둥머리에 공포를 짜 올린 익공식 구조이다. 조헌을 기리기 위한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해마다 추모제향을 올린다.



충청북도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에 있는 사당. 임진왜란 때 왜군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조헌(, 1544~1592)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608년(광해군 1)에 세웠고 이듬해에 사액사당이 되었다. 사당의 삼문인 충의문은 솟을삼문의 형태이며 화려한 단청으로 꾸며져 있다. 삼문 안쪽 정면에는 조헌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사당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영정각은 1단의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정면 1칸은 퇴칸이며 민흘림기둥에 익공식 구조이다. 사당 오른쪽 언덕 위에는 조헌의 묘소가 있고 아래쪽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해마다 9월에는 이곳에서 조헌의 충정을 기리는 중봉충렬제가 열린다











영모재는 충청북도 문화재 자료 제 75호. 2010년 6월 11일 지정. 배천조씨문열공종회 소유의 재실 1동으로 조헌의 제사를 위한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5량 민도리 겹처마 팔작 기와지붕의 재실이다. 상량문을 통해 1812년 창건하고, 1970년 큰 중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있으며, 건축부재, 건축구조, 마루청판, 고미반자, 축조기술 등이 종합적으로 볼 때 보존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