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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면 안락리 류몽정신도비(老隱面 安樂里 柳夢鼎神道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노은면 안락리 류몽정신도비(老隱面 安樂里 柳夢鼎神道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5. 2. 06:41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에 있는 문화인 류몽정의 신도비입니다.

신보비는 구 신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으며 신도비의 전면에는 유명조선국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증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세자이사문화유공학암위몽정신도비(有名朝鮮國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贈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世子貳師文化柳公鶴巖諱夢鼎神道碑)라고 음기되여 있습니다.



류몽정(柳夢鼎)은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이다.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경임(景任), 호는 학암(鶴巖). 유관(柳寬)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유용량(柳用良)이고, 어머니는 안동인 권련의 딸이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여 음보(蔭補)로 현감이 되었다. 1574년(선조7)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로 있을 때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벼슬에서 물러났다. 1587년(선조 20) 성주목사로 재직 중 풍속의 문란을 방지하지 못하고, 죄수가 옥문을 부수고 도망한 책임을 지고 또다시 파직되었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 성절사로 명나라에 들어가 조선의 위급한 사항을 보고하고 구원병을 청하여 원병을 끌어오는 데 공을 세우고 같은 해 9월에 한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병조참의, 승정원승지, 우부승지(右副承旨)를 거쳐, 이듬해 승정원우승지, 우부승지가 되었으나 그 해 9월 병으로 사망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 산89번지에 있으며, 묘역은 50평 정도이다. 대리석 상석 측면 둘레에 묘명을 각자하였으나 마멸이 심하다. 망주석과 문인석이 각 1조씩 있다. 묘소의 동남쪽 마을 입구에 김유(金揉)가 지은 비갈(碑碣)이 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공신을 책봉하는 과정에서 유몽정의 이름도 거론되었으나 조정의 의논이 달라 책봉되지 못하였다. 광해군 때에 아들 유영이 상소하여 공신으로 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예전의 논의를 번복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좌찬성에 증직되어 그 명예만 갖도록 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안락리(安樂里)는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에 속하는 법정리입니다.


1898년(고종 35)에 발간된 『충청북도 각군읍지』 충주군조에 “충주군 노은면 마을 남쪽 안락골의 이름을 따서 안락리(安樂里)로 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안락리라는 지명은 안락골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안락리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지역으로 비교적 넓은 평야지대가 있어 문화유씨 등이 일찍부터 들어와 세거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영조 35)에는 “이곳은 자작리(自作里) 지역으로 충주관아로부터 70리 거리에 위치하며 56가구에 총 343명(남 142, 여 201)이 거주한다”라는 기록이 있고, 『충청북도 각군읍지』에는 “마을 남쪽 안락골의 이름을 따서 안락리(安樂里)로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법동, 대덕3리, 가정의 일부를 병합하여 안락리라 하였다.

북쪽으로 승대산이 솟아 있고, 서쪽으로 행덕산 줄기인 안산[321m]이 펼쳐져 있다. 남쪽으로 한덕이산과 장고개[334.7m], 능안고개, 토막재 등이 있다. 앞쪽으로 원곡천과 법동천이 합류하여 한포천으로 흘러든다. 고마니들, 둔전들, 통매들, 둥구재들 등 넓은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노은면 안락리는 면적은 5.2㎢로 이 가운데 경지 면적은 밭 0.52㎢, 논 0.9㎢, 과수원 0.01㎢이고, 임야는 3.34㎢(64.2%)이다. 농가는 74가구이고, 비농가는 28가구이다. 동쪽은 가신리, 북쪽은 대덕리, 서쪽은 법동리, 남쪽은 신니면과 이웃하고 있다. 안락1리와 안락2리 2개 행정리와 5개의 반으로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안락1리에 모롱가지·용당(龍塘)·본말[本坪]·사냥골, 안락2리에 두리봉·새터·안골·안락골이 있다. 안락리 북쪽으로 지방도 520호선이 동서로 가로지른다.

일제강점기에는 잎담배를 경작하여 소득을 올렸으며, 지금은 찹쌀을 많이 재배하여 브랜드화하고 고추·채소·버섯·복숭아를 재배하여 소득을 올리고 있다. 1960년대까지 본말과 안락골 사이에 법동천의 유수(流水)를 이용한 물레방앗간이 있었고, 남쪽에 있는 본평마을의 아카시아 숲에는 백로·왜가리 서식지가 있었으나 1970년대 후반부터 자취를 감추었다.

주요 기관으로는 노은초등학교 수상분교장과 안락보건진료소가 있다. 종교 시설로는 영모재, 수상순복음교회, 들꽃교회, 주덕성도마성당 수상공소 등이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문화유씨 삼세효자 정려, 유몽정 묘비, 유용량 묘, 안골 고분군, 안락리 유물산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