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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왕읍 유촌리 애국지사조응삼묘석(金旺邑 柳村里 愛國志士趙應三墓石)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금왕읍 유촌리 애국지사조응삼묘석(金旺邑 柳村里 愛國志士趙應三墓石)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8. 4. 10. 11:50



금왕읍 유촌리 마을안쪽 충정사옆에 비석이 있다.

애국지사한양도공응삼지묘(愛國志士漢陽趙公應三之墓)라는 비석이 충정사 입구옆에 자리하고 있다.


조응삼은 의병으로 고종22년(1885)8월14일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에서 희윤(喜允)의 아들로 출생하여 병관의 양자가 되어 충주군 소파면 소파동

(현/음성군 소이면 중동리)에 농사에 종사하며 살면서 자를 인형이라 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고 1991년에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묘소는 금왕읍 유촌리 97-7 웃가래들에 있다가 2011년 4월 6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하였다.



조응삼(1875.08,14-1956.6.25) 충청북도 음성(陰城) 출신이다. 1907년 8월 23일 정봉준(鄭奉俊) 의진에 입진하였다. 당시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에 이어서 군대해산이 강행되자 서울의 시위대와 강화도의 진위대가 의병으로 전환하여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여 의병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보다 대중화되었다. 이에 강원도 원주에서 활약하고 있었던 의병장 이은찬(李殷瓚)·이구재(李九載)가 5백 명의 의병을 모집하고 7월에 이인영(李麟榮)을 찾아가 총대장이 되어 줄 것을 청하였다. 이인영은 이를 승낙한 후 강원도 원주로 출진하여 관동 창의 대장에 오른 후 사방에 격문을 발하여 의병을 소모하였다. 이리하여 원주를 중심으로 하여 13도 연합 의진이 구성되고 있을 때, 이에 고무를 받은 조응삼은 1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총기를 가지고 지평(砥平)·원주 등지에서 9월 중순까지 군자금 모금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그가 체포된 직후 그의 부대는 이인영의 13도 연합 의진 휘하에 흡수되어 서울 진격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그에 앞서 체포된 조응삼은 공주 지방재판소로 압송되어 소위 폭동죄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註·공주지방재판소판결문(1908. 9. 30)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가래버들이 많으므로 가래들 또는 유촌리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와우리()·촌서리(西)·촌동리()·한삼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유촌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되었다.

문화 유적으로는 아래가래들에 미륵불, 조유안 효자정문과 능골에는 민발 신도비가 있다. 자연 마을로는 가래들·광정·구룡리·능골·머구럭지·새터·아래가래들·웃가래들 등이 있다. 주요 도로로는 서쪽의 유포리에서 동서 방향으로 지나는 지방도가 있고, 동쪽에는 국도 21호선이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