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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외면 구티리 김명진애민선정비(山外面 九峙里 金明鎭愛民善政碑) 본문
어사 김명진의 애민선정비가 있는 구티리는 본래 보은군 산외면 지역으로서 거북티 고개 밑이 되므로 거북티 또는 구티(龜峙)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티라 하였다. 구티는 원래 마을 입구에 있는 산이 거북이와 같다고 해서 구티(龜峙)라 하였으며, 또한 구티고개가 아홉구비(九峙)라고 해서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고도 하였다.
어사 김명진의 철비로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구티리 우체국옆에 자리하고 있다.
철비는 원래 무슨 연유인지 땅속에 묻혀있다가 1980년 홍수가 나면서 발견되였다고 한다.
주민들이 발견하여 현위치에 세웠다고 한다. 비의 상부부분이 파손되여 망실되고 재질이 철로서 글자도 부식이 심하여 잘 알아 볼수가 없다.
비의 뒷면에 있는 글을 보면 1875년(고종12) 동치(同治)14년 을해(乙亥)4월에 건립된것이다.
암행어사는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을 받고 지방행정의 잘잘못과 민심 및 백성의 생활상태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던 임시직책이다.
수의(繡衣) 또는 직지(直指)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 초에는 행대(行臺) 또는 찰무(察務) 등의 이름으로 지방에 조사관을 파견했으며 세종 대에는 임명과 행동이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관리를 파견했다. 중종 대에 들어 비밀리에 어사를 파견하는 경우가 늘어났으며 명칭도 암행어사라고 불렀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암행어사의 파견에 대한 반대의견도 강해 선조 대까지는 별로 시행되지 못하다가 왜란과 호란으로 정치의 기강이 흐트러짐에 따라 인조 이후 암행어사의 파견이 빈번히 이루어지면서 상설 제도화되다시피 했다. 특히 18, 19세기 삼정의 문란으로 민란이 자주 발생하자 이를 수습하고 민심을 회유할 목적으로 자주 파견되었다.
암행어사에게는 역마를 사용할 수 있는 증명서인 마패와 형구의 크기 등을 검열할 수 있는 유척(鍮尺, 놋쇠로 만든 자)이 지급되었다. 암행어사는 왕의 명령을 직접 집행하므로 관리의 파면 및 직무의 정지, 옥에 갇혀 있는 죄인의 재판, 백성의 고통과 청원의 처리 등 모든 문제를 현지에서 즉결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으며 그 결과를 서면으로 왕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당쟁이 치열해지면서 암행어사 역시 자기가 속해 있는 당파나 인연이 있는 가문의 관리를 두둔하는 등 문제점을 발생시켰으며, 하급관리들의 부분적인 비행만을 들춰내는 데 그쳐 근본적인 행정개혁이나 백성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명진(金明鎭)은 1840년(헌종 6)∼미상. 고종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치성(稚誠).
조부는 김병선(金炳先), 부친은 김석균(金奭均)이며, 김세균(金世均)에게 입양되었다.
1870년(고종 7) 정시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1873년에 별겸춘추(別兼春秋)가 되고, 이듬해에는 암행어사가 되어 충청좌도에 파견되었다.
1879년에 동부승지를 거쳐 1882년에는 대사성에 올랐다.
그뒤 시관(試官)‧춘천부사를 거쳐 1886년 경기관찰사, 1888년 경상도관찰사등 외직에만 5년 이상 근무하였다. 경기‧경상도관찰사로 재직중에 올린 장계(狀啓)의 내용에는 당시 수취체제의 혼란상이 상세히 적혀 있어서 고종연간의 사회상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고종실록》에는 장계내용이 요약되어 나타나 있는 바, 경기도에 관한 것이 7회, 경상도에 관한 것이 4회나 기록되어 있다.
1890년에는 이조참판을 지냈다.
김명진이 암행어사의 임무를 마치고 올린 별단의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여있다
그 이듬해 철비가 세워진 듯 하다
고종 11권, 11년(1874 갑술 / 청 동치(同治) 13년) 11월 4일(계묘) 2번째기사
암행어사 김명진의 별단에 따라 토지를 다시 측량하게 하다
하니, 윤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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