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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면 한계리 목사이익저영세불망비(加德面 閑溪里 牧使李益著永世不忘碑)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가덕면 한계리 목사이익저영세불망비(加德面 閑溪里 牧使李益著永世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0. 7. 28. 13:47

가덕면 노계리 마을입구에 서 있는 조선조 청주목사 이익저의 영세불망비입니다

 

이익저에 대하여는 여러번 다녀와 소개한 글로 대신합니다.이익저에 관하여 자세한 내용은 다른글로 참조하시고 이익저가 벼슬길에서 물러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이익저에 관하여 자료를 찾던중 아래와 같은 신문의 내용을 읽을수 있었습니다.참고하시고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4/11/1462838/

 

[역사의 향기] 관찰사의 인사

영조 대 소론의 영수로 영의정까지 역임했던 이광좌는 약관의 나이인 스무 살에 별시문과에서 장원급제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 공부를 시작해 문과에 합격하는 평균 기간이 보통 20년 정도 걸

www.mk.co.kr

 

 

이익저영세불망비의 좌우면입니다.

 

마을분들은 원래의 영세불망비는 길 건너에 서있던걸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영세불망비에 대하여 잘 모르시는 분들은 석불이나 선돌로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구요.이 곳에 이익저의 영세불망비가 서있는 이유는 무얼까?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이익저는 청주목사를 지냈습니다. 이익저의 비석은 청천면에 1기가 존재하며 문경새재길에 상주목사시절의 마애비로 1기가 있습니다. 

 

청천면 삼락리 이익저유구불망비(靑川面 三樂里 李益著愈久不忘碑) (tistory.com)

 

청천면 삼락리 이익저유구불망비(靑川面 三樂里 李益著愈久不忘碑)

청천면 삼락리마을 들어가는 입구에 서있는 조선조의 인물인 이익저의 불망비입니다. 삼락리는 청천면의 서북부에 위치한 농촌마을이다. 학동들의 글읽는 소리, 여인네들의 베짜는 소리,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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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상주목사이익저불망비(聞慶새재 尙州牧使李益著不忘碑) (tistory.com)

 

문경새재 상주목사이익저불망비(聞慶새재 尙州牧使李益著不忘碑)

1관문에서 2관문 쪽으로 700m 정도를 가면 오른쪽 산 중턱에 처마같이 돌출된 바위가 있고 그 아래에 ‘폭포동’이 새겨져 있다. 비가 위치한 곳은 이곳에서 2관문 쪽으로 약 10여m 정도 떨어진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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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 365책 (탈초본 19책) 숙종 22년 5월 29일 갑신 13/14 기사 1696년  康熙(淸/聖祖) 35년에 의하면 이익저거 청주목사에 제수되었음을 알수있다.

○ 有政。以朴安道爲承文正字, 以元泰龜爲沃溝縣監, 以柳鳳瑞爲兵曹正郞, 以洪柱震爲司成, 以洪九齡爲載寧郡守, 以申瓛爲司䆃主簿, 以蔡成胤爲兵曹正郞, 以徐宗泰爲左副賓客, 以李日三爲司藝, 以鄭澔爲義城縣令, 以李師尙爲洪川縣監, 以兪準一爲繕工假監役, 以南延年爲祥原郡守, 以洪有龜爲奉常僉正, 以金始徽爲掌令, 以兪信一爲正言, 以李健命兼文學, 以吳道一兼同經筵, 以李濡爲大司諫, 以李健命爲校書校理, 以金昌錫爲禁府都事, 以金弘楨爲掌令, 以徐宗憲爲正言, 以李益著爲淸州牧使, 以權始經爲都承旨, 左副賓客李畬, 右副賓客徐宗泰。

 

이익저영세불망비의 후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