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문의문화재단지
- 부여박물관
- 사인암
- 경주김씨
- 선돌
- 국립청주박물관
- 보성오씨
- 단지주혈
- 화양구곡
- 티스토리챌린지
- 공주박물관
- 곡산연씨
- 청풍문화재단지
- 부도
- 각연사
- 문경새재
- 오블완
- 공산성 선정비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한독의약박물관
- 청주박물관
- 화양동 암각자
- 효자문
- 사과과수원
- 밀양박씨
- 충주박물관
- 효자각
- 충북의 문화재
- 법주사
- 상당산성
- Today
- Total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회남면 조곡2리 마을풍경(懷南面 鳥谷2里 마을風景) 본문
조곡2리 마전사는 사실에서 재너머고개를 지나 국사봉 400m고지까지 올라야 만날 수 있다. 마전사는 사실에서도 직선거리 1.7km 정도 떨어진 오지에 위치한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밖으로 나오는 유일한 길도 차량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다. 겨울철 눈이라도 내리면 동네는 완전 고립된다. 운전이 서툰사람은 찾아가기도 힘든동네이다.
오월의 햇볕아래 인적없는 조곡2리이다. 이쁘게 만든작은 텃밭에 여러가지 채소가 많다. 마을유래비에 의하면 세대수가 12호가 산다고 하는데 찾은날은 인적을 찾기가 힘이 들었다.
은행나무를 찾아 내려가니 왁짜한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내려가 보니 보은군에서 은행나무 주위를 정리하기 위해 예초기등을 가지고 풀을 베고 있었다.
마전사 남쪽 아래로 내려가면 판장리 큰골로 이어져 있지만, 사람의 왕래도 없고 조그만 저수지가 막고 있어 길도 사라졌다. 마전사는 조선시대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국사봉 남쪽에 마전사란 절터가 있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세조가 속리산에 왔다가 돌아갈 때 이 절에서 3일간 머무르며 베옷을 빨아 말린 일이 있어 이러한 이름을 얻었다 한다.
다른 이야기로는 기우제를 지내던 스님이 비에 젖은 베옷을 말려 입고 갔다 하여 마전사라 불렀다고도 전한다. 또한 세조가 이곳에서 사슴사냥을 하였다 하여 마록사라고도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전사는 산 중턱 평지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고, 물결치는 산줄기를 굽어보고 있다. 절터는 흔적도 없지만, 전해지는 이야기만 봐도 마을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절터로 추정하는 곳에 서 있는 500년 된 은행나무(보호수, 1982)는 둘레가 10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목이다. 그 옆으로 크기가 좀 작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자리하고 있는데, 마을에서는 자식 은행나무라고 불린다. 암수 짝을 맞추어 가을이면 실한 은행을 맺는다 한다. 특이하게도 은행나무에 토종벌통을 올려놓았다. 은행나무 틈사이로 벌집을 지었는지 벌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은행나무는 절의 지주가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마을의 생성 유래와도 관계가 있다. 절에 암수 두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주지승이 은행나무 잎이 떨어져 지저분하다고 은행나무를 베어버렸다. 은행나무에서는 우윳빛 백색물이 나왔고 주지승은 피를 쏟고 죽었다고 한다. 거목을 신성시 하여 보살피자는 마음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인 듯 하다. 그 뒤로 절은 쇠락하게 되었고 이 후 마을이 생기기 시작 했다는 이야기다.온 동네가 절터인 셈이다.
산골의 오후 햇살을 맞으며 주민 한 분이 텃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오래전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다가 다시 고향을 찾아오셨다 한다. 마 을이 너무 마음에 들어 이곳에 살고 싶다는 이방인의 말에 아저씨는 물도 귀하고, 겨울이면 고립되는 오지라며 한사코 만류하셨다. 은행나무에 대하여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다.
예전에 이곳에 탄광이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탄광이 개발되었을 때는 30가구가 넘게 살았다. 그러나 조용하던 마을에는 탄광 개발로 불미스런 일들이 많이 생겼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보니 저녁이면 술판이 벌어지고 싸움이 빈번히 일어났다. 탄광 개발로 마을 분위기가 안 좋아졌었다고 한다. 폐광된 후로 사람들도 다 떠나고 몇가구 남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의 추세라면 조곡2리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모르겠다. 고산지역이다 보니 텃밭에서 밭농사를 짓거나 대부분은 과실수를 재배한다
'내고장풍경화둘러보기 > 대추하면 보은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남면 거구리 풍경(懷南面 巨九里 風景) (0) | 2021.06.02 |
---|---|
회남면 거교2리 풍경(懷南面 巨橋2里 風景) (0) | 2021.06.01 |
회남면 거교1리 풍경(懷南面 巨橋1里 風景) (0) | 2021.05.31 |
내북면 적음리 마을풍경(內北面 積蔭里 마을풍경) (0) | 2019.10.19 |
회인면 눌곡리(懷仁面 訥谷里) (0) | 2019.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