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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면 화양동 홍열모각자(靑川面 華陽洞 洪說謨刻字)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청천면 화양동 홍열모각자(靑川面 華陽洞 洪說謨刻字)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3. 9. 2. 00:46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의 화양구곡 제9곡에 위치한 파천가에 있는 암석에 새겨진 홍열모의 이름 각자입니다.홍열모가 충청도관찰사 시절 이 곳을 다녀가면서 각자한것으로 보여집니다.

 

홍열모는 1804(순조 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립(聖立). 홍감보(洪鑑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선호(洪善浩)이고, 아버지는 생원 홍희명(洪羲命)이며, 어머니는 김이중(金履中)의 딸이다.

1829년(순조 2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833년(순조 33) 한권(翰圈)에 선발된 후 이어 시행된 한림소시(翰林召試)에 뽑혔다. 1836년(헌종 2) 도당록(都堂錄) 회권(會圈)에 선발되었고, 이듬해에는 원접사(遠接使)의 문례관(問禮官)으로 임무를 다하였다.

그 뒤 모사도감(摹寫都監)에서 도청(都廳)을 잘 수행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고, 1848년 이조참의에 제수되었다가 이듬해에는 대사성을 역임하였고, 1850년(철종 1)에는 상시(上謚) 때에 예방승지(禮房承旨)로 활약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다.

그 뒤 충청도관찰사·경상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가 곧 이조참판으로 복귀하였다. 1855년(철종 6)희릉(禧陵) 친제(親祭)시 예방승지(禮房承旨)로 보필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고, 도승지를 거쳐 예조판서·병조판서, 우참찬(右參贊) 등을 역임한 뒤 1857년(철종 8)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로 파견되었다.

이듬해 예조판서로 재직 중 남전증건도감(南殿增建都監) 감동(監董)의 공으로 가자되었고, 이어 판의금부사, 공조판서·한성부판윤·형조판서 등을 거쳐 1862년(철종 13) 이조판서에 제수되었다. [洪說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승정원일기 2511책 (탈초본 122책) 철종 1년 11월 1일 기축 17/31 기사 1850년  道光(淸/宣宗) 30년

○ 有政。 吏批, 判書李魯秉進, 參判徐英淳式暇, 參議未差, 右副承旨金永爵進。 以鄭基世爲吏曹參議, 金左根爲禮曹判書, 吳取善爲戶曹參判, 朴齊憲爲兵曹參判, 金始淵爲同經筵, 李景純爲同義禁, 徐箕淳爲藝文提學, 金景善爲同春秋, 申錫禧爲軍資正, 沈宜聞爲直講, 楚徵明定陵參奉, 都必中和陵參奉, 洪說謨忠淸監司, 金鎰淳樂安郡守, 丁大植陽川縣監, 趙鳳熙山淸縣監, 成原鎭興德縣監, 趙鎭夏沙斤察訪, 奉常奉事單白時殷, 咸鏡監司徐有薰今加資憲, 定陵·和陵修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