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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면 대장리금표비(蘇伊面 大長里禁標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소이면 대장리금표비(蘇伊面 大長里禁標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6. 21. 10:02

 

 

 

 

 

 

 

 

 

 

 

 

 

 

 

 

 

 

금표라 함은 일정지역의 사람의 출입을 금지시키기위하여 세운 비석을 말한다

 

금표(禁標)는 조선시대 연산군이 사냥 등의 유흥을 위해 한양도성 외곽 경기도 일원에 민간인 통제구역을 설정하고 그 경계에 세운 통행금지 표지이며 이 구역을 금한(禁限)이라고 하고, 동금표(東禁標)·서금표·남금표 등 경계의 요소요소에 금표비(禁標碑)를 세우고 무단통행자를 사형 등의 극형에 처하였다. 연조실록에 따르면 "도성 사방에 100리를 한계로 모두 금표를 세워 그 안에 있는 주현과 군읍을 폐지하고 주민을 철거시킨 다음 사냥터로 삼음으로써 기전(畿甸) 수백 리를 풀밭으로 만들어 금수(禽獸)를 기르는 마당으로 삼았고, 여기에 들어가는 자는 목을 베었다"고 한다. 연조는 이 구역을 관리하기 위하여 금표검찰도사·금표검거인 등의 관직도 만들었으며, 금표 내의 출입이 허용된 자들을 위하여 금표통행패 100개를 한정적으로 발급하였다. 금표 내의 출입을 경고하는 금표비는 고양·파주·광주·양주·시흥·김포 등 경기도 일원에 세워졌으나, 중종반정 이후 파괴매몰되었고 1995년 경기 고양시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금표비(禁標碑)는 높이 1.47m, 너비 0.55m, 두께 0.23m의 이 화강암 비석에는 "금표내범입자 논기훼제서율(禁標內犯入者 論棄毁制書律:금표 안으로 들어온 자는 삼족멸족이 가능한 기훼제서율로 다스린다)"이라 새겨져 있다

 

사찰이라든지 아니면 일정직급이상의 사대부등의 묘등을 보호하기 위하여

지방에서도 금표를 만들어 세우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대장리에 자리한 금표도 그런 형태의 금표가 아니였을까 추측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