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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월동 남일우불망비(丹月洞 南一祐不忘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단월동 남일우불망비(丹月洞 南一祐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6. 25. 10:50

 

 

 

 

 

 

 

 


  • [정의]
  • 조선 말기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문신.

    수안보면 안보리에도 영세불망비가 있다


    [수안보면 안보리 마을회관앞에 자리한 남일우의 영세불망비]

  • [개설]
  •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백경(伯敬), 호는 우당(寓堂). 아버지는 나주목사를 지낸 남병선(南秉善)이다.

  • [활동사항]
  • 1859년(철종 10)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873년(고종 10) 대사성, 1876년(고종 13) 이조참의·성균관대사성을 거쳐, 1878년(고종 15) 예방승지가 되었다.

    1879년(고종 16) 동지부사로 나라에 다녀온 다음 해 성균관대사성이 되었고, 1881년(고종 18) 대사헌을 지냈다.

    1882년(고종 19) 충청도관찰사로 재임 중 관청의 부실한 재정과 조세제도를 정비하여 백성들의 궁핍을 덜어주었으며,

    주사읍진(舟師邑鎭)의 수토군과 수영(水營)의 난후군(欄後軍)을 혁파하여 군사제도를 정비하였다.

    1884년(고종 21) 사헌부대사헌이 되었고, 그 후 군국사무협판·이조참판·홍문관제학과 경상도관찰사를 거쳐 1886년(고종 23) 공조판서에 올랐다.

    1886년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 훼절되어가던 『대전회통(大典會通)』, 『대명률(大明律)』, 『무원록(無寃錄)』 등을 개간·인출함으로써 형정(刑政)에 공헌하였다.

  • [저술 및 작품]
  • 남일우 자신의 관력과 관직 생활을 일기 형식으로 적은 근무일지 『종정일력(從政日曆)』 3책이 전한다.

     

    남일우(南一祐)에 대하여
    1837년(헌종 3)∼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 뒤에 일우(一愚)로 개명. 자는 백경(伯敬). 태순(太淳)의 손자이며, 나주목사 병선(秉善)의 아들이다.
    1859년(철종 10)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873년(고종 10) 성균관대사성, 1876년 이조참의가 되었으며,

     

    1879년에는 그해의 동지부사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뒤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1882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어 충주·연풍·부여·청안 등지의 관청의 부실한 재정을 일제히 정비하였고, 

     

     조세제도를 정비함으로써 흉년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었으며,

     

    충청우도에 산재한 주사읍진(舟師邑鎭)의 수토군(搜討軍)과 수영(水營)의 난후군(欄後軍)을 혁파하여 군사제도를 정비하기도 하였다.
    그뒤 사헌부대사헌·이조참판·홍문관부제학을 거쳐 1886년에는 경상도관찰사로 있으면서 오랜 시일이 경과하여 점차 훼절(毁絶)되어가던

     

    조선조의 기본법전인 《대전회통》·《대명률 大明律》·《무원록(無寃錄)》 등을 개간, 인출(印出)함으로써 형정(刑政)에 공헌하였다.
    그해에 공조판서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