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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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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몽진(邕夢辰)[1518~1584]의 본관인 순창 옹씨는 고려 시대에 병부 상서를 지낸 옹희태(邕羲泰)를 비조로 하며, 원래 고려 시대에 거족이었다 한다. 고려가 망하면서 초산(楚山)[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옥천(玉川)[지금의 순창]의 향리로 강속되었다. 옹몽진이 음성 현감을 역임하고 충청도사, 병조 좌랑을 거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使)에 이르러 집안을 다시 세우면서 순창 옹씨의 시조가 되었고 한다. 그러나 옹몽진의 증조할아버지인 옹은(邕誾)을 시조로 보기도 한다.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응룡(應龍)·응기(應祈). 증조할아버지는 옹은(邕誾), 아버지는 순창군의 호장인 옹태운(邕太雲)이다. 옹몽진은 1518년(중종 13년) 10월 순창군의 오산 아래[지금의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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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목사 이국헌의 선정비입니다.이국헌(李國憲)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문숙(文叔)이다. 부친은 이여연(李汝淵)이다. 1660년(현종 1) 증광시(增廣試)에 생원 3등 45위로 입격하였다. 1676년(숙종 2) 호조정랑(戶曹正郞), 문의현령(文義縣令), 부사과(副司果), 이듬해 금산군수(錦山郡守)를 역임했다. 1683년(숙종 9) 부사직(副司直), 1684년 밀양부사(密陽府使), 상의첨정(尙衣僉正), 무주부사(茂朱府使), 1685년 남양부사(南陽府使), 1687년 훈련주부(訓鍊主簿), 1689년(숙종 15) 충주목사(忠州牧使)에 부임하였다. 선정비는 1691년(숙종 17)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묘갈형 비신으로 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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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면 소매리에 위치한 단양우씨 입향조 우계근의 무덤입니다. 석인 한쌍과 혼유석 그리고 향로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석에는 어모장군훈련원습속관단양우공휘계근지묘숙부인상주박씨연부(禦侮將軍訓練院習續官丹陽禹公諱繼勤之墓淑夫人上州朴氏連祔)하고 적혀있으며 비석 뒷면에는 우계근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우계근의 아버지는 우원기로 문과에 급제하여 현령을 지냈다. 우원기는 계근,계범 계공 3형제를 두었는데 장남인 계근은 자는 성공이며 벼슬은 어모장군 훈련원습독관이다.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기를 싫어하여 산림에 묻혀 가훈을 잇고 자손을 이끌었다. 계근은 송도에서 괴산으로 이거하여 괴산의 단양우씨 입향조가 된다. 우계근(禹繼勤) 1496(연산군 2)~1547(명종 2) 조선 전기의 무관으로 자는 성공(成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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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 앞의 불망비에는 ‘도순찰사민공치상영세불망비(都巡察使閔公致庠永世不忘碑)’라 쓰여 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공충감사를 연임했던 1870년이다. 민치상(1825-1888)은 조선후기 예조판서, 판의금부사,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양(景養), 사호(賜號)는 하당(荷堂).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의 5대손이며, 민용현(閔龍顯)의 아들이다. 1845년(헌종 11) 전강(殿講)에서 수석하고, 이듬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1849년 홍문관수찬에 임용되었다. 1850년 8월 진하사은 겸 세폐사(進賀謝恩兼歲幣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56년(철종 7) 홍문관부응교·예방승지, 1859년 성균관대사성, 이듬해 홍문관제학을 역임, 이어 도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