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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9/12 (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오래전에 들렸던 음성향교를 다시 한번 더 들려 공적비를 살펴보는데 이해용의 기념비가 보이질 않는다. 아픔도 역사라고 친일파의 비석이라고 없앤것은 아니길 바랄뿐이다. 없애는 것이 아니고 따로 안내판을 설치하여 학습의 장으로 삼았으면 더 좋치 않을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이다. 이해용의 비석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이해용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해용 공적비중 일부는 훼손돼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비 좌측 하단에 ‘己巳六月’(기사(년)육월)란 글자가 육안으로 확인된다. 즉 기사년(1929년) 6월에 비를 건립한 것을 알수 있다. 또 친일파 이해용(李海用의) 한자이름과 비석에 새겨진 이름이 동일하다. 청주백제유물전시관 강민식 박사는 “음성향교 앞에 설치된 이해용 기념비는 일제 때 세워진 ..

장갑리는 본래 보은군 산외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남악, 벌말, 궉말, 새말을 병합하여 장갑리라 하였다.비석은 장갑리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모아 한군데에 세워 놓았다. 일제강점기때의 비석이 대부분이다. 보은군 산외면 장갑리 장갑삼거리에 있는 공적비중에 좌측에서 다섯번째 있는 비석이다.비석에는 정삼품통정대부김규한선덕불망비(正三品通政大夫金奎漢善德不忘碑)라고 음각되여 있으며 비의 건립시기는 갑오년(1954) 시월십일로 음각되여 있다. 1910년 산외면 남악리에 살던 전 교관(敎官) 김규한(金奎漢)은 교육에 뜻을 두어 기금을 거출하고 동지들의 뜻을 모아 광흥학교를 설립하고자 하였다.당시 신문에 이와 관련돤 광고가 게재되었는데 학교설립을 위한 취지문을 보면 여전히 유학의 영향력이 많이 남아있음..

민천식(1861-1915)은 민영휘의 아들입니다. 민천식은 아버지 민영휘가 백성을 수탈하고 모은 재산과 한일병합 공로로 일제로부터 받은 은사금을 모태로 세운 한일은행에서 지배인으로 일하던 중 1915년 사망한다. 그가 사망하자 언론들은 그의 직위를 '한일은행 지배인 대리'로 표기하며 사망사실을 보도했다. 민천식이 오십중반의 나이에 죽게되자 당시 민영휘의 소실인 얀유풍(민천식의 모친)이 소유하고 있던 이 땅에 묘지를 쓰게 됩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통정대부홍릉참봉여흥민천식지묘 배숙인전주이씨부좌(通政大夫弘陵參奉麗興閔天植之墓 配淑人全州李氏拊左)라고 적혀 있으며 비석의 좌,우,후면에는 민천식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비석을 바라보며 좌측에는 당시 민천식이 설립하여 책임자로 있던 한일은행의 이름으로 만든 추도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내에 자리하고 있는 친일파 민영휘와 안유풍의 아들로 한일은행 지배인대리를 지낸 민천식의 묘지입니다.추도비와 묘비 그리고 망주석2점과 문인석2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민천식의 묘지위로는 그의 모친인 안유풍의 묘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장되고 무덤으로 쓰던 빈터만 남아있습니다. 민천식의 묘밑으로는 청주시에서 운영하는 생태공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공원을 다녀가면서 이 곳이 민영휘의 아들인 민천식의 묘라는걸 알고 또한 역사의 슬픔을 알고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민천식은 민영휘로 부터 많은 땅을 물려받은 듯 하다.기사에 나오는 민대식,민규식등은 모두 민천식과 형제지간이다.1923년 3월10일자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면 이 날짜 東亞日報에 의하면 東洋拓殖株式會社 所有土地는 2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