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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9/08 (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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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초등학교는 1920년 4월13일 오창보통공립학교로 개교하였다. 지금의 석재기둥은 개교당시 사용되었던 석재기둥으로 두동강으로 훼손되었지만 잘 접합하여 보관되어 있습니다. 석주에는 오창공립보통학교(梧倉公立普通學校)라고 한문으로 음각되어 있습니다. 석주 옆으로는 오창초등학교 10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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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향교앞에 자리하고 있는 송덕비입니다. 음성시내 이곳저곳에 있던 비석을 한군데로 모아놓은것입니다. 음성을 스쳐간 관찰사와 현감등의 비석과 함께 일제강점기와 현재의 인물등의 비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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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연주2리 중촌(중간말)에 있는 돌탑입니다. 돌탑은 자연석을 쌓았으며 위에는 작은 선돌개념의 돌이 세워져 있습니다. 예전에 동네우물이 있던장소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연주리는 연지동(蓮池洞), 주암(舟岩), 고성리(古城里)가 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1739년 여지도서에는 주암리에 63호, 고성리에 10호가 살았다고 두 마을로 구분하여 기록되어 있으며 1891년 신묘장적에는 주암리에 73호, 연지동에 5호, 고성리에 6호가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조정때 주암리, 연지동, 고성리를 합하여 연주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7년말 현재 연주1리 배바우에 101호 244명이 거주하고 연주2리 독락정에 49호 111명이 살고 있다. 연주리라는 명칭은 연지동의 연(蓮)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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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바우 마을 뒤편에 광산김공삼순송덕비(光山金公三淳頌德碑)와 전참봉김용준시혜불망비(前參奉金容濬 施惠不忘碑)가 있다. 배바우 주위에는 웃골, 비들먹재, 점말, 피실, 황골, 맘마골, 분터골, 왜마루 등이 있다. 점말서 강가로 내려가다 연지동이 있고 강가에 안피실이 있는데 모두 폐촌되어 빈터만 남아있다. 배바우 뒷편에 있던 비석들이 무슨일인지 공원 한켠에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송덕비와 불망비가 있던 곳이 사유지로 경매로인해 주인이 바뀌면서 이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합니다.신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옥천군이 광산 김씨 문중 효자비각에 수천만 원을 투입해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펼쳤지만 2년도 안 돼 철거되는 사태가 벌어져 허술한 문화재 관리가 도마에 올랐다.문제의 문화재는 안남면 연주리 소재 광산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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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저수지를 축조하는데 물심양연으로 힘쓴 사리수리조합 조합장 유복성과 이사 윤남로의 공적비입니다. 비석은 같은 시기인 1980년 2월에 같이 건립 되었습니다. 비석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이 생활하는데 물의 중요함은 어린아이의 젖과 같거늘 하늘은 사람의 소망을 모두 들어주지 않으며 홍수와 가뭄으로 농민들을 항상 불안하게 한다. 이런 홍수와 가뭄을 해소하여 주신 선각자가 계시니 그는 유복성(윤남로)선생이라. 공은 향토발전의 지름길이 치수에 있음을 공감하고 저수지를 설치하여 천추만대에 옥토를 마련코자 4년여 동안 향민을 설득하고 감화시키는 등 열심으로 노력하여 서기 1964년 8월2일에 이 고장의 보고인 백마저수지를 준공하였다. 이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 선생의 노력은 정말 끝이 없었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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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읍 장대리 오창초등학교에 있는 양주인 조중철의 송덕비입니다.비석의 전면에는 양주조공중철송덕비(楊州趙公重喆頌德碑)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조중철의 송덕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조중래는 의사로서 오창에서 인술을 펼치었다.1904년에 출생한 양주인 조중철은 어린시절부터 총기가 있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충절의 의를 다하였다. 1952년에는 의사검정을 치루어 합격한 후 1954년에 의원을 개원하여 귀한 인명을 널리 건지고 없는 사람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으며 있는 사람에게는 실비를 받으며 병을 고쳐주었다. 광복후에는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여 지방민심을 평안케 하였으며 1954년부터 4년간은 고장 면의회의장을 1957년 부터 4년간은 오창중학교에서 1963년 에서 4년간은 오창국민학교에서 각각 기성회장으로 뽑히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