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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4/01 (3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문의면 상장리에 있는 연안인 효자 이혁우의 유적비입니다.비석 전면에는 만하이공유적비( 晩霞李公遺蹟碑)라고 적혀있으며 좌우면에는 이혁우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도로 뒷쪽에 자리하고 있어 보기가 조금 힘이듭니다.유적비의 주위도 관리가 시급합니다. 상장리는 본래 문의군 읍내면의 지역으로 1776년에는 기산리, 삼리, 장곡리로 있다가 후에 이동, 강변리를 포함하였다. 상장의 주된 부락은 원상장 마을이었던 바 노루실 부락의 윗동네를 말했다. (1789년 장곡리를 상,하로 구분했음) 따라서 상 장곡 마을을 상장으로 부르다 일정시에 지금의 상장리로 부른 듯 하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기산리, 강변리, 이동, 삼리, 우항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장리라 해서 청원군 양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30년에 다시 문..

문의문화재단지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출처와 제작년대등이 명확한 기와편입니다. 대부분의 기와는 개인소장품을 기증받아 전시하여 놓았습니다. 도광5년(1825년) 과 숭정기원후 신유년(1681년)등 제작년대가 뚜렷한 기와 들입니다.청주동헌등에 사용되었던 기와들입니다.

유소령의 본관은 강릉으로 청성면 도장리에서 태어나 청성면 화성리 이천서씨利川徐氏 가문 서성기에게 출가하였다. 평소 효로써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의 뜻을 따르며 규문 閨門의 모범이 되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악성 구창(口瘡: 입안이 허는 병증)으로 매일 고통을 받자 백방으로 좋은 약 을 구해다가 치료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이때 구창에는 사람의 살이 특효약이라는 풍문을 듣고는 자기의 허벅지살을 도려내어 달여 먹였다. 그러자 남편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져 1973년 4월 15일 옥천 군수에 의해 정렬표창貞烈表彰을 받았다. 마을 주민들은 제 살을 베어 남편을 살린 그녀의 굳은 심지와 가족을 아끼는 마음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비석에 그녀의 행적을 새겨 청성면 화성리 화동마을 입구 산..

문의문화재단지에 있는 중부지방 사대부집안의 양반가옥을 재현한 가옥입니다. 1994년도에 이곳에 건립하여 재현하였습니다. 양반가옥답게 안채의 뒷쪽으로는 가묘(家廟)를 설치하였습니다. 가묘는 그 집안의 가장 높은장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묘(家廟)는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이 고조(高祖) 이하의 조상의 위패(位牌)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던 집안의 사당(祠堂)이다.제주는 장자(長子)만이 할 수 있고, 차자(次子) 이하는 할 수 없다. 이것은 인격의 불평등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단위의 공동체 내부에서 예를 세움으로써 제가(齊家)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뜻이다. 따라서 인간의 길흉시, 즉 관·혼·상·제 의식이 가묘를 중심으로 행하여진다. 사당의 위치는 정침 동편에 3간으로 짓는다. 앞에 문을 내고 문밖에 3층 계..

오늘이 절기상으로 대한(大寒)인데 날씨는 제 구실을 못하고 겨울비가 내립니다. 텅빈 집안에 앉아 티브이를 보다보니 티브이에서 만두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린시절 밤이 긴 겨울이 되면 어머니는 만두를 많이 빗으셨습니다. 지금이야 만두속으로 고기며 잡채며 여러가지 재료를 넣어 맛을 내지만 그 시절에는 만두속이라야 김치와 그리고 삭은 고추와 약간의 두부가 전부였지요. 그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그 만두맛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추밭에서 제대로 익지도 못한 고추를 모아서 간장에 담가 놓으셨던 그 삭은 매운고추의 맛이 지금도 너무 강렬하게 마음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커다랗게 빚은 손만두를 채반에 가지런히 하셔서 가끔씩 저녁대용으로 끓여 먹었던 만두국. 올망졸망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에게 끓여주셨던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