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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4/02 (4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주가 고향이신분들은 이 자리를 한일은행자리로 기억하실겁니다. 식산은행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립된 최초 금융기관이다. 농공은행은 1906년 농업과 공업의 개량 발달을 위해 설립된 은행이다. 당시 정부에서는 지방 금융의 핍박을 우려하여 전국 주요 도시에 정부 창고를 건설하고 미곡의 담보 대부, 부동산의 담보 대부를 행하였다. 그러나 그 시설이 응급적·과도적인 것에 불과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부 자원도 빈약하여 지방 금융을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없었다. 이에 정부는 1906년 3월 「농공은행조례(農工銀行條例)」를 공포하여 농공은행을 설립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지방 산업의 발전과 금융 유통을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각 관찰도(觀察道) 단위를 영업 구역으로 하는 농공은행을 설립하였다. 1..
괴산군 문광면 광덕리 문광복지회관 앞에 자리하고 있는 충원인 안창익(安昌益)의 송덕비입니다.일제강점기 시절의 인물이며 마을의 발전과 이웃에 대한 구휼등에 앞장선 인물입니다. 송덕비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부모에게 효를 다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 덕을 높이한 사표가 있으니 안창익공이다. 공은 고려때 충원백(忠原伯) 모은(慕隱)치기의 21대 손이며 의영공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백부 화양공에게 양자로 입적 성장하였다.호를 송계라 하고 충원이 본이다.공은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학문을 깊이하여 지와 덕을 함께 하였다.효 또한 극진하여 생가와 양가의 부모를 한결같이 모셨으며 간병을 하루같이 하였으므로 하늘이 낸 효자라고 하였다. 가난한 이웃을 또한 크게 도왔으니 일제치하의 혹독한 공출로 아미동과 신촌의 40..
괴산군 문광면 광덕리에 소재한 순창조씨의 사당인 칠충사의 아래에 위치한 정려문에 있는 칠충신의 정려현판을 한번 같이 모아봤습니다. 칠충사에 있는 조기충신정려현판은 충신(忠臣)갈충효성병기익명참영사일등공신(竭忠效誠炳畿翊命參寧社一等功臣)행선교랑오위도총부오위장( 行宣敎郞五衛都摠府五緯將)조기지려(趙沂之閭)인조무진삼월일( 仁祖戊辰三月日)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광면 광덕리 조기공적비(文光面 光德里 趙沂功績碑) (tistory.com) 문광면 광덕리 조기공적비(文光面 光德里 趙沂功績碑) 조기(趙折》1584(선조 17)~1661(현종 2)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는 자안,본관은 순창이다. 충신 조복의 후손이다. 1628년(인조 6) 선교랑으로 있을 때 최여헌이 반란을 일으키자 숙부인 조덕 king6113.tistory.c..
괴산군 문광면 광덕리에 위치한 순창조씨들의 선조들을 모셔놓은 사당인 칠충사에 있는 비석들입니다. 칠충사에 모신 일곱분의 비석과 함께 칠충사건립에 힌써온 종중회장등의 비석이 한자리에 있습니다. 가까운 마을인 송평리에 순창조씨들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비석과 현판은 따로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원면 미원리에 있는 미원돗대 유래비입니다. 설명문에 의하면 미원의 형국이 배가는 형국이라는 풍수설에 따라 땅의 기운을 돕기위하여 세운것으로 일명 보대라고도 부른다. 미원이 마한의 엣땅이라 본래 솟대를 세웠으나 전설에는 옛날마을에 재앙이 그치질 않아 돛대를 세우니 그 때부터 편안해 졌다고 한다.돛대는 처음 장터에 서있었으나 도로공사로 인하여 철거하게 되니 고장의 안녕과 번영을 염원하는 주민들의 뜻을 모아 옛 민속을 계승하여 이 곳에 돛대를 옮겨 세웠다.2005년 10월 일.
조종(趙悰)은 1437(세종19년)-1506(연산군12) 조선초기의 무관으로서 본관은 순창(淳昌)이다.조신(趙神)의 증손(曾孫)이다.무과(武科)에 급제하여 1467년(세조13년)이시애(李施愛)의 난 때 원사 조석문(曺錫文)의 선봉장(先鋒將)으로 전공을 세워서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주종(追從)되었고 후에 은성군 도호부사(都護府使)를 지냈다. 묘소와 사당(七忠祠)는 괴산군 문광면 광덕리에 위치하고 있다. 비석에는 충신(정충출기포의적개공신)첨지중추부사순창조공종공적비( 忠臣(精忠出氣布義敵愾功臣)僉知中樞副使淳昌趙公悰功績碑)라고 적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