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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청원구 북이면 호명리 동리입구에 있는 인동장문 충효각입니다.호명리는 본래 청주군 산외이면 지역으로 예전에서부터 호랑이가 울고 다녔다는 설이 있으나 그 사실 여부는 희미하고 주변 큰 산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말이 있다. 특히 삼보산은 그 앞이 마을 뒤가 되는데, 인동 장씨 중시조의 산소를 모신 산 형국이 범의 얼굴 형상을 띠어 그 산형을 따서 호오리라 이름 지어 불러오고 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북이면에 편입되었다. 동은 증평읍 원평리이고, 서는 선암리, 남은 숙정리, 북은 증평읍 남하리에 접해 있다. 호명리의 자연마을은 양달말, 음달말, 새태말이 있다. 북이면 호명리에 있는 이 충효각은 1935년에 장경달(張慶達)의 충절과 장문창(張文昌)․장순급(張舜汲)의 효행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
김원효자각은 확실한 이유는 알수 없지만 청원군 수대리에 있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그 이유로는 지금도 많은 정보에는 김원의 효자각은 수대리로 표기되여 있기 때문이다.청주와 청원군이 통합된 통합청주시 문화유적 비지정문화재 효자문편에도 아직도 남이면 수대리로 적혀있으니 말이다.북이면의 김원의 효자각을 다녀온지가 햇수로 4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정보가 수정되지 않고 있으니 이게 뭐하는 일인지 아직도 모르겠다.문화재를 담당하시는 분들은 현지 답사도 한번 없이 그냥 표기를 하나보다. 이 효자각은 조선 효종 6년(1665)에 내자사정(內資寺正) 오교(午橋) 연안인(延安人) 김원(金瑗, 1568~1636)의 효행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지금의 효자각은 1955년에 중건하고 1986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간 측면 1간..

문광면 흑석리 미륵불은 흑석리 상촌에서 동쪽에 있는 산의 20 m정도 오른 지점에 불상의 형식을 갖춘 석인상의 미륵불이 2기가 한 쌍으로 세워져 있다.흑석리 미륵불은 마을 공동의 수막살이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미륵불(弼勤佛)은 고려 시대와 조선시대에 마을의 수구막으로 석불형 미륵불을 조성하기도 하였다.이 미륵불은 본래 현재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괴산댐이 생기기 이전에 흑석리 아삽마을 아래 탑바위 물가에 있었는데, 흑석리 김천년(김상기1908〜1990, 법명: 무철)이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미륵불이 나타나‘내가 탑바위 아래 물에 묻혀있으니 꺼내 달라는 기이한 꿈을 꾸고 궁금해서 현지에 가보니 정말로 꿈에 보았던 미륵불이 있어 이 곳으로 옮겨 세워놓았다 한다.이 미륵불은 모..

수한면 산척리 마을광장 보호수아래 놓여있는 연자맷돌입니다. 산척리는 북으로 하궁리, 동으로 보은읍 용암리, 남으로 동정· 병원리, 서로는 도로를 경계로 율산리와 접해있다. 본래 보은군 수한면지역으로 큰고개 밑이 되므로 산자골 또는 산척곡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은로리와 회인군 동면 산척리 일부를 병합하여 산척리라 하였다. 자연마을은 반목과 웃산자골이 있으며, 지명으로는 고두리, 달박골, 도장골,보독골,서농골,안산,할무당골,회골등이 있다 연자맷돌과 보호수가 자리하고 있는 동리의 지명은 반목이다. 반목은 외부에서 보면 마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산속깊이 자리한다. 워낙 산깊이 있다보니 피난처로 유명했다고 한다. 마을이 외지다 보니 시내버스도 율산 산저골에서 들어오는 길이 확포장되고 그..

꽃 피고 새잎 나면 길 떠난다 하시더니 봄바람이 겨워 꽃비 내리고 연두빛 어린 새순 돋아나던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봄날 찬란한 봄햇살 받으며 영원한 안식처로 가셨습니다.새벽별 이정표 삼아 달구지 몰며 아침을 밝히시며 논 밭을 일구신 아버지 베 짜고 비단 짜서 이부자리 만드시던 어머니.손발이 다 닳아 가시손이 되어서도 일손을 놓치 않으시더니 눈보라 세찬 정월 어느날 자리에 누우신 후 한 마디 말도 남기지 못하시고 홀연히 가셨습니다.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키우신 부모님의 사랑으로 자란 자손 모두는 크나큰 사랑을 길이 남기고자 이 비를 세웁니다. 2009.7.3 세상에서 가장 큰사랑으로 어머니 아버지! 동정리에서 산척리로 너머가는 동정리 길목에 있는 비석입니다. 비각을 보고서는 무언가 하고 보니 부모님을 ..

본래 보은군 수한면 지역으로서 소의 목이 되므로 소메기, 또는 우항(牛項)이라 하였는데, 1941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말관리(末串里)와 묘북리( 畝北里)를 병합하여 소계리라 하였다. 자연마을 가막재(加幕재):새터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숯가마가 있었음. 말꼬지:소메기 동북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말모양의 곶으로 됨. 수한지서가 있는 마을. 새커:소메기 남쪽에 새로 생긴 마을. 소메기:→소계리 양지말:소메기골 끝에 있는 마을. 양지편에 있음. 우항:→소계리 음지말:소메기 북서쪽에 있는 마을. 양지말 전에 있는 마을로 음지편에 있음. 기타지명 가막너머 골:가막재 너머에 있는 골. 가막재:말꼬지에서 가막재로 넘어가는 고개. 가막현:가막재. 각시암:소계리에 있는 바위. 각시처럼 생겼음. 갈마음수혈산:소계리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