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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주시 용관동에 있는 조선조 충주목사를 지낸 이국헌의 마애선정비입니다.목사이공국헌애민선정비( 牧使李公國憲愛民善政碑)라고 적혀 있으며 마애비가 새겨진 바위의 암질이 좋치 않아 자세히 보아야 알수 있습니다. 하단에는 마애비를 본뜬 비석을 일기 세워 놓았습니다.이국헌의 비석은 충주와 음성 그리고 괴산등지에 많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음성읍 목사이국헌영세불망비(陰城邑 牧使李國憲永世不忘碑) (tistory.com) 음성읍 목사이국헌영세불망비(陰城邑 牧使李國憲永世不忘碑)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목사 이국헌의 선정비입니다.이국헌(李國憲)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문숙(文叔)이다. 부친은 이여연(李汝淵)이다. 1660년(현종 1) 증광시king6113.tistory.com주덕읍 사락리 ..
1814년(嘉慶19년)에 건립된 충주목사를 지낸 우봉인 이광헌의 선정비입니다.이광헌은 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입니다.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원장(元章). 문정공(文正公) 이재(李縡)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제달(李濟達)이며, 아버지는 이목(李木)이고 생부는 이화(李禾)이다.이광헌은 1795년(정조 19) 사마시에 합격한 뒤 1808년(순조 8) 순창군수를 역임하였으며 1814년(순조 14) 충주목사로 재직하였다. 같은 해 정시 문과에 급제하고, 1819년 사간원대사간이 되었다. 1822년 이조참의, 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하였으며, 1825년 동지부사로 연경에 다녀와 이듬해 강화부유수가 되었다.충주목사 재임시 주민들에 의해 청덕애민선정비가 건립되었다.선정비에는 행목사이공광헌청덕애민선정비( ..
단월동 단월대교옆의 새로 조성된 비석들입니다. 그 동안 달천동의 이곳 저곳에 산재되어 있던 비석들을 한군데로 모아 비석을 개립하였습니다. 달천강다리에 있던 충주목사들의 비석과 함께 엽연초 생산조합내에 있던 비석3기 그리고 단월동 길가에 위치했던 면장의 비석까지 한군데로 모아 정비하였습니다. 충주목사를 지낸 이정로의 비석은 충주에만 몇 기 아직도 자리하고 있습니다.단월동,상가흥,금가면등에 자리하고 있습니다.상가흥과 금가면의 비석도 모두 처음의 자리는 아니며 이곳 저곳에 있던 비석들을 다른 비석들과 함께 모아 놓은 것입니다.단월동의 비석은 비신이 깨어져 접합하여 놓았습니다. 비석에는 행목사이후정로애민선정비(行牧使李侯正魯愛民善政碑)라고 적혀있습니다.비석의 건립시기는 1877년인 정축년(정축년) 3월 입니다. ..
음성디지털 문화대전에는 조선시대의 문신이라고 소개되어 있으나 제 생각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힘들었던 상당리 주민들을 위하여 세금대납과 식량등을 풀어 주민들을 빈곤에서 구한 상당리에 거주했던 최홍걸의 시혜비정도로 보면 좋을것 같습니다.비석은 상당리 주민들에 의하여 임신년(1932년)에 세워졌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소파거사최홍걸시혜불망비( 少坡居士崔弘杰施惠不忘碑 )라고 적혀있습니다.정억성효자비와 함께 나란히 서있습니다. 비석주변의 관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단월동 단월대교옆에 있는 평택인 임진식의 추념비입니다.1936년 일제강점기에 충주시 풍동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도 조국잃은 아픔을 달래고자 신사참배운동을 거부하였으며 그로인해 등교정지를 당하는 등 어린시절부터 조국의 광복을 위해 힘썼습니다. 충주중학교 3학년 시절 민족의 비극인 6.25사변이 일어나자 여러친구들과 함께 소년단을 조직하여 공산당은 망한다는 멸공의 벽보등을 제작하여 벽보를 게시하는 등 반공의 선봉에 섰다가 어린나이인 17세에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후세에 기리고 학생들의 반공 및 멸공정신의 고취등을 위하여 교육청에서 주관이 되어 1986년에 이 곳에 추념비를 세웠습니다.비석의 전면에는 반공애국소년임진식추념비라고 각자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임진식의 행적과 함께 건립기가 적혀 ..
정억성은 일제강점기의 효자로서 공부자탄생2479년(1928년)에 음성군 명륜회장으로 부터 포상을 받은 효자입니다.원남면 상당리 옛날 마을초입길에 있습니다. 연일정공휘억성효자비( 延日鄭公諱億成孝子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뒷면에는 정억성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억성의 아들 정만수가 일제강점기인 소화16년 (1941년)에 생전의 아버지의 포상내역(1928년)을 기록하여 동네 어귀에 세웠습니다. 효자비 전면에 있는 비석의 건립시기인 소화(昭和)16년인 신사년(辛巳年) 오월에 세웠습니다. 그 후 누군가의 의해 글자가 훼손되었으나 판독에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