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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조선전기 의학자 유효통 등이 향약의 모든 방문을 수집하여 1433년(조선 세종 15년)에 간행한에 간행한 의서. 의약서입니다.1431년 가을에 집현전 직제학 유효통(兪孝通), 전의감정 노중례(盧重禮), 동 부정 박윤덕(朴允德)에게 명하여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1433년 6월에 완성하였다.이 책은 1399년(정종 1) 제생원에서 간행한 ≪향약제생집성방 鄕藥濟生集成方≫ 30권의 구증(舊症)과 구방을 기본으로 하여 다시 향약의 모든 방문들을 수집하고, 또는 널리 방서들을 빠짐없이 모아서 분류, 첨가하여 만든 것이다.구증이 388이던 것이 959로, 구방이 2,803이던 것이 1만706이 되었으며, 그 밖에 침구법(鍼灸法) 1,416조, 향약본초 및 포제법(炮製法) 등을 합하여 85권으로 되었다. 세종이 권..
조선후기(순조17년.1827년) 의원 이종인(李鍾仁)이 두창의 치료와 종두법에 관하여 저술한 의서 상·하 2권 1책. 필사본. 이 책 이름의 시는 시두(時痘), 즉 두창을 말한 것이고, 종은 종두법(種痘法)을 가리킨 것으로서, 양자를 종합, 편성한 인두종법(人痘種法)의 전문서이다.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에 있다.이종인은 영평부사(永平府使) 박제가(朴齊家)로부터 인두종법을 전수한 뒤, 서울 북방의 여러 신가(紳家)에 실시하여 인두종법이 우리나라에 널리 전해지게 하였다. 그런데 1801년(순조 1) 봄에 서학(西學)의 혐의로 인두종법이 한때 중단되었다가 영남에 전해져 다시 보급되게 되었다.이 책의 내용은 두창의 총설, 증후 및 치료법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중요시한 것은 종두로서, 종두시종법례(種痘始終法..
우두신설(牛痘新說)은 1885(고종 22)년에 지석영(池錫永)이 엮은, 종두(種痘)에 관한 책. 총 2권 1책이다. 2권 1책. 활자본. 우리나라 최초의 종두서(種痘書)이다. 상·하 두 권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지석영이 오랫동안 경험해온 지식을 종합하여 간행하였다. 상권의 서두에 김홍집(金弘集)·이도재(李道宰)의 서(序) 및 저자의 서가 있고, 그 다음에는 영국 의사 제너(Jenner, E.)의 『우두고(牛痘考)』·『우두속고(牛痘續稿)』, 햅슨(Habson)의 『종두론』과 『만국공보』에 소개된 『우두내력』 등을 기재하였다. 그밖에도 청나라 가경(嘉慶) 22년(1817) 남해구희(南海邱熺)의 「인두약서(引痘藥序)」, 청나라 도광(道光) 8년(1828) 『인두략(引痘略)』을 중간(重刊)한 회망언(會望彦)의..
한독의약박물관에 전시중인 1930-50년대 사용하던 외과수술도구입니다.당시의 수술도구의 모습과 함께 의학도구의 발전모습을 살펴볼수 있습니다.
한독의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금강령입니다. 종(鐘)의 형태에 번뇌를 없애준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금강저의 형태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불교의 의식법구를 말한다. 즉 불교의식 때 소리를 내어 여러 불·보살들을 기쁘게 해주고 어리석은 중생의 불성을 깨닫게 하여 성불의 길로 이끌어주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그 연원은 인도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 밀교의식을 행하기 위한 특수한 법구가 된 것은 8세기 중엽 중국 당나라 때부터이다. 이와 같이 밀교 법구로 출발한 금강령은 늦어도 8세기말 통일신라시대에는 밀교와 함께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밀교가 하나의 종파로 발전하지 못하고 다른 종파에 습합되는 불교사상의 시대별 추이에 따라 금강령도 점차 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