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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45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답양리는 1636년 병자호란 당시 밀양박씨가 양지골에, 경주김씨가 논골에 각각 피난을 와서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답동(논골)의 답沓자와 양지골의 양陽자를 취하여 답양리라 하였다. 행정리노는 답양리 단일이며, 자연마을은 화골, 논골, 위텃골, 양지골 등의 4개 마을이 있다. 농산물은 주로 밭농사를 지으며, 특산물로 가산영지버섯, 표고버섯, 고추, 참깨를 생산한다. 온돌에 쓰이는 구들석재를 생산하며, 가산사가 있다. 주요 성씨로는 병자호란 때 밀양박씨 국당 후손들이 양지골에 들어와 살고있고, 논골에 경주김씨가 세거한다. 옥천판석공장은 답양리 윗터골 서쪽 산에 있는 구들을 생산하는 채석장으로 1970년대까지 여러개의 판석광산이 있었다. 채굴을 시작한지 70년이 넘었다.
동이면 금암3리 마을에 있는 동네우물입니다. 지금은 수도시설등이 갖추어져 사용을 안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리운 풍경입니다. 보호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습니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조헌(1544∼1592)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조헌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김경백 등과 의병 1,600여명을 모집하고 승병인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충청도 순찰사인 윤극형의 방해로 의병이 강제 해산되어 700여명으로 금산전투에 참전했으나 모두 전사하였다. 건물 규모는 앞면 3칸·옆면 1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솟을대문과 돌로 쌓은 담장이 둘러져 있고, 뜰에는 금산전투에서 그를 대신하여 죽으려 했던 그의 아들 조완기의 효자각이 서 있다. 이곳에는 광해군 3년(1621) 판각한 『항..
안내면 도이리 마을입구에 있는 조헌과 그의 맏아들 조완기의 충신,효자문입니다. 조완기(趙完基, 1570 선조 3~1592 선조 25)는 조선 중기의 효자로 자는 덕공德恭, 호는 도곡道谷, 본관은 배천白川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중봉重峰 조헌趙憲의 맏아들 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킨 아버지 조헌을 따라 종군하였다. 이때 어 머니 상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고, 그의 할머니가 아직 생존해 있었다. 이에 아버지 조헌이 싸움터 에 나가지 말고 집안을 돌보라며 만류하였다. 그러나 그는 위태로운 전장에서 아버지를 돌보겠다며 한사코 듣지 않고 끝내 종군하였다. 그리고 항상 아버지 곁에서 시중을 들고 보호하였다. 청주성 싸움에 출전하여 청주성을 왜군의 점..
청성면 도장리 마장부락입구에 있는 문수암에 있는 난국계원비석입니다. 난국계원지비(蘭菊禊員之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비석의 전면과 좌우면에는 난국계원들의 이름이 각자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기축(己丑)년으로 적혀있으며 비석의 상태등으로 보아 1949년으로 추정됩니다. 마장리에는 옛날 관리들의 여행자 숙소인 은천원이 있었고, 그곳에 말을 매어 놓는 곳 이 있어 말바탱이라 불려서 마장馬場이라 했다. 옛날부터 풍수해와 가뭄이 없고 들이 넓고 풍요로와 청산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마을로 꼽혔다. ‘청산의 제일은 마장이다’라고 구전 된다. 주요 성씨는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배출한 옥천육씨이며, 마을 뒷산에 목사공 선대 묘소와 재실이 있다. 한우 사육 농가가 많으며 벼농사와 사과, 인삼 등을 재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