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 한독의약박물관
- 공주박물관
- 효자각
- 밀양박씨
- 보성오씨
- 단지주혈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부여박물관
- 부도
- 청주박물관
- 곡산연씨
- 충주박물관
- 화양구곡
- 국립청주박물관
- 사과과수원
- 경주김씨
- 선돌
- 문의문화재단지
- 사인암
- 공산성 선정비
- 효자문
- 문경새재
- 각연사
- 티스토리챌린지
- 법주사
- 충북의 문화재
- 상당산성
- 오블완
- 화양동 암각자
- 청풍문화재단지
- Today
- Total
목록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45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문수암 전기공사 보은군 보은면 삼산2구 대시주 왕기수서기1976년이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청성면 마장리에 위치한 문수암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 김용덕에 의하여 창건되었습니다. 그 후 사세를 이어오다 1970년대 새로 중건을 하면서 문수암 전기공사를 맡아 시주한 왕기수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입니다. 비석의 글씨는 세련되지 못했습니다.문수암에 창건주 비석등과 함께 서있습니다.

옥천군 안내면 현리에 자리하고 있는 서낭당입니다. 지금은 서낭당의 모습은 찾을길이 없으며 당시의 성황목등도 사라졌습니다. 당시 이 곳을 오고가는 길손들이며 마을주민들이 자신과 동네의 안녕을 빌었던 괴석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괴석(怪石)옆으로는 당시 옥천군수를 지낸 황종림과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김명수의 비석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신도비는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중봉 조헌(1544∼1592) 선생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조헌은 명종 20년(1565) 성균관에 입학하여 2년 후인 1567년 병과에 급제하였다. 그후 호조좌랑·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전라도도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옥천군 안읍 밤티로 들어가 제자양성과 학문에 전념하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1,600여명을 모아 청주성을 수복하였으나 충청도순찰사의 방해로 해산당하여, 불과 700여명의 남은 병력을 이끌고 금산으로 행진하였고 고바야가와의 왜군과 전투를 벌여 끝까지 분전하다가 칠백의병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두암마을의 민가 옆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주위에서 고려시대의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이 당시의 옛 절터임을 알게 되었다.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1982년 12월17일에 지정되어 관리되고있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쌓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꼭대기의 머리장식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본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아래층 기단에는 각 면마다 3개씩의 안상(眼象)을 움푹 들어가게 새겼고, 위층 기단에는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부의 1층 몸돌에는 한쪽면에 문짝모양을 새겼는데 그 안에 자물쇠도 표현해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위로 살짝 들려 있다. 2층 기단에 3층 탑신..

청성면에 자리하고 있는 기유정입니다, 기유정을 있기까지 대지를 희사한 청성면 안티미에 이석봉과 기유생으로 주변의 있는 많은사람들의 뜻을 모아 기유정을 건립하였습니다.정자라고 칭하기에는 조금 아쉬운감이 들지만 나름 뜻한바로 모임의 징표를 남기고자 정자와 비석을 세웠습니다.

가산사는 임진왜란 때 기허 영규대사와 중봉 조헌 선생이 이곳에서 승군과 의병을 일으켜 훈련하였다 하여 호국도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규대사와 조헌 선생은 힘을 합하여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전투에서 왜군을 맞아 싸우다 순절하였다. 이에 가산사에서는 영정각을 짓고 영규대사와 조헌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였는데 지금은 위패만 모셔져 있다. 영정각 지붕에 있는 망와의 명문으로 보아 조선 숙종 20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건축의 형태는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매우 작은 규모지만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산신각은 산신탱화를 봉안하기 위한 집으로 영정각과 같은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