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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45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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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면 마장리 마을입구 정자옆에 자리하고 있는 육경수회갑기념식수비 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종산육경수회갑기념식수(宗山陸庚修回甲記念植樹)라고 적혀있습니다.청성면 마장리는 옥천육씨가 대성이며 옥천육씨와 관련된 재실과 선대묘역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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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읍 수북리 옥천선사공원에서 안티교를 건너기 전 좌측 야산기슭에 있는 일제강점기시절 동네에 야학을 열어 글을 배우고 문맹에서 탈출하도록 도와준 송재명과 조준홍 두분의 고마움을 잊지않기 위하여 1944년 이 곳에서 배움을 깨우친 제자동문들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조선생준홍기념비(曺先生埈洪紀念碑)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수북리(水北里)는 원래 군동면(郡東面) 수북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옥천읍(沃川邑)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1739년의 기록에는 군동면 수북리라 하여 52호가 살았고, 1891년의 기록을 보면 36호가 살았다고 되어 있다. 1910년 군동면이 동면이 되면서 수북리도 이에 속하게 되었다. 1949년 옥천읍이 승격하면서 동이면(東二面) 수북리를 옥천에 이관시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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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은 마을로 들어오는 액이나 질병, 살(煞), 호환(虎患), 화기(火氣) 등을 막기 위해 쌓은 신앙 대상물이다. 하지만 마을 앞의 허한 방위를 막기 위해서나 특정한 모양의 지형을 보완하기 위해 쌓은 단순 비보물(裨補物)이기도 하다. 다른 신앙 대상물에 비해 풍수적인 비보(裨補)신앙의 모습을 가장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고갯마루나 사찰입구에 지나가는 길손이 마구잡이로 던져 놓은 잡석의 서낭당이나 개인이 신을 향한 구도의 마음으로 쌓은 돌탑과는 구별된다. 주민들의 소망과 정성이 모아진 비교적 정교한 마을신앙 대상물이기 때문이다. 돌탑은 돌이 지닌 영구불변성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종교 원리를 이용한 신앙 대상물이다. 돌이 지닌 주술성을 토대로 주민들이 하나씩 정성껏 쌓아 올린다.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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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면 고당리 마을초입에 있는 강릉유씨의 재실인 숭모재 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강릉인 유석종의 건립공적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강릉유공석종건립공적비(江陵劉公碩鍾建立功績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재실을 지을 때 물심양면으로 많은 역할을 한것 같습니다. 문이 잠겨있어 자세한 내력을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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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면 구음리 비석거리에 있는 파주염씨국파공손 세거지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파주염씨 국파공손세거지지비(坡州廉氏 菊坡公孫世居之地)라고 써 있으며 비석의 건립시기는 1995년 입니다. 국파공 염국보(菊坡公 廉國寶)은 예문관대제학을 지냈습니다. 청성면 구음리는 파주염씨들이 대성입니다. 염국보는 ?∼1388(우왕 14). 고려 후기의 문신입니다. 본관은 서원(瑞原)-지금의 파주.기타 서성군(瑞城君), 기타 동당학사(東堂學士) 이며 아버지는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염제신(廉悌臣)이다. 서성군(瑞城君)염흥방(廉興邦)·염정수(廉廷秀)는 아우로서 형제가 모두 급제하였다. 이제현(李齊賢)―안보(安輔)로 이어지는 좌주문생(座主門生)의 관계였다. 학문적 경향은 성리학을 수용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안렴사(按廉使)로 지방에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