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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45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大小人員皆下馬(대소인원개하마)’라고 새긴 비석을 줄여 이르는 말. 이 비석은 궁가(宮家) · 종묘(宗廟) · 문묘(文廟) 등의 앞에 새겨 세운 것으로, 누구든 이 앞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리라는 지시 푯돌을 가르킵니다. 옥천향교 홍살문전에 세워진 옥천향교 하마비 입니다.
. 행군수 조후준구 영세불망비 (行郡守 趙候駿九 永世不忘碑)라고 써 있습니다 옥천읍 교사리 비석거리에 있습니다. 옥천군내 산재되어 있던 불망비등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근래의 비석들을 망라하여 한군데 모아 놓은곳입니다.
청풍정에는 조선 말엽 김옥균金玉均이 낙향하여 기생 명월과 함께 소일하여 지냈는데, 기생 명월이 국가를 개혁할 인물인 김옥균이 외진 곳에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장부의 큰 뜻을 펴길 바라며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애틋한 이야기가 전한다.현재 명월암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 정자는 1993년 옥천군에서 정면 3칸, 팔작 기와 지붕으로 재현한 것이다 장일암 터 옥천에서 보은쪽으로 37번 국도에서 군북면 국원리 왼쪽으로 갈라지는 길을 따라 석호리로 약 2㎞ 들어가다 보면 층암절벽으로 된 큰 바위에 명월암이라 음각되어 있고, 그 옆에 청풍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곳이 바로 장일암 옛터이다. 청풍정은 옥천읍지에 의하면 “당초 장일암 있었던 곳에 청풍정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청풍정은 1790년에 참봉 김종..
충청북도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에 있는 사당입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조헌(趙憲, 1544~1592)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608년(광해군 1)에 세웠고 이듬해에 사액사당이 되었다. 사당의 삼문인 충의문은 솟을삼문의 형태이며 화려한 단청으로 꾸며져 있다. 삼문 안쪽 정면에는 조헌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사당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영정각은 1단의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정면 1칸은 퇴칸이며 민흘림기둥에 익공식 구조이다. 사당 오른쪽 언덕 위에는 조헌의 묘소가 있고 아래쪽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해마다 9월에는 이곳에서 조헌의 충정을 기리는 중봉충렬제가 열린다
안남면 도농리 농막마을입구에 있는 하동인 정병복의 효행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하동정공병복효행비(河東鄭公秉福孝行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후면에는 정병복의 효행기록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비석은 서기 1997년에 세워졌습니다. 공은 1896년 에 출생하여 생후 3개월만에 중백부(작은아버지)에게 입양하여 성장하였다. 성장 후 공은 생부모와 양부모에게 모두 효성이 지극하였다.그러던 중 모친인 은진송씨가 몸이 허약하여 중풍으로 몸의 거동이 불편하게 되자 열심을 다해 구약하여 모친을 돌보았으나 백약이 무효인지라 1923년부터 20여년이라는 장구한 세월동안 와병하게 되었다. 공은 하루도 빠짐없이 부부간에 환자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지성껏 간병하며 대소변을 받아내고 때마다 식사를 먹여드려야 했다. 이렇게 지성껏 모시..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4년경에 건립되었으며 대문채, 사랑채, 안채, 벽돌로 축조한 광채가 있다. 안채는 전면 5칸반, 측면 2칸반으로 평면 구성은 중앙에 1칸의 대청 마루를 중심으로 서측에는 건넌방, 동측에는 웃방.안방.부엌을 배치하여 중부지역의 전형적인 민가 평면으로 구성되었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개화기 우리 한옥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건축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현재 정주영씨가 살고 있는 이곳은 그의 아버지 정구창(1910-1994) 선생이 살던 곳이다. 정주영 가옥은 처음 보아도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느낌을 준다. 1930년에 건축했다는데 기둥과 목재 재질이 밝게 보인다. 안채는 정면 5칸 반, 측면 2칸의 一자형 전후 툇집으로, 중앙의 1칸 반 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