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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통합청주시/서원구(西原區) (281)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강고사는 1932년에 보성오씨(寶城吳氏) 문중에서 진사 지선정(止善亭) 오명립(吳名立, 1563∼1633)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1971년에 노봉서원(魯峰書院)에 배향되었던 문헌공(文憲公) 대사헌(大司憲) 규암(圭庵) 송인수(1487∼1547)와 포천현감(抱川縣監) 북창(北窓) 정렴(鄭廉, 1506∼1549)을 추향하고 매년 음력 3월 15일에 향사하고 있다. 지금의 사당은 1968년에 중건하고 1971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간, 측면 2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인데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중앙에 쌍문과 좌우에 쪽문을 달았으며 강고사(江 祠)라는 편액을 걸었고 마당 앞에 솟을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강고사 건너편 연덕에는 정자인 지선정이 자리하고있다그리고 정자 지선정이 ..
현도면 달계리 보성오씨공원에 있는 보성오씨 현도면 입향조인 오숙동의 묘비입니다. 오숙동으로 인하여 보성오씨가 현도면과 낭성면에 세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오숙동 묘소(賢都 吳叔仝 墓所)는 청주시 서원구에 있다. 2017년 3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15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오숙동의 묘지는 달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근간에 새로 조성된 보성오씨공원을 바라보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밑으로는 보성오씨의 충신문등 여러가지 보성오씨에 관한 많은 유적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묘비에는 진위부위보성오공휘숙동지묘배서인원주원씨부좌(進義副尉寶城吳公諱淑仝之墓配端人原州原氏祔左)라고 써있습니다. 단인(端人)의 호칭은 조선시대의 정팔품 문무관아내의 품계를 말합니다.
보성 오씨의 시조 오현필의 9세손 오숙동(吳叔仝)이 태종말에 남해안에 자주 출몰하여 피해를 주던 왜구를 피해 보성에서 현도면 양지리[월대촌]에 들어와 청주 입향조가 되었다. 오숙동은 당시 달계리에 거주하던 원계종의 집에 거주하게 되었고 이 후 그의 사위가 되어 보성오씨의 현도 입향조가 됩니다. 오숙동으로 인하여 보성오씨가 현도면과 낭성면에 세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오숙동 묘소(賢都 吳叔仝 墓所)는 청주시 서원구에 있다. 2017년 3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15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오숙동의 묘지는 달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근간에 새로 조성된 보성오씨공원을 바라보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밑으로는 보성오씨의 충신문등 여러가지 보성오씨에 관한 많은 유적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묘비에는 진위부위..
원래 시목리에 있던 충신문인데 이곳으로 이건하였습니다. 이 충신각은 조선 숙종 1년(1675)에 병자호란 당시 고원군수(高原郡守)로서 청나라 군과 싸우다가 순절하여 이조좌랑(吏曹佐郞)에 증직된 보성인(寶城人) 오대남(吳大男, 1597∼1637)의 충절을 기리어 나라에서 세운 정려이다.현도면은 보성오씨들의 유적이 참 많다 .시목리를 비롯 달계리와 양지리 중삼리등에 보성오씨들의 충신문,효자문,열녀비등이 즐비하다. 오대남은 조선시대 무신으로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하여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때 공주로 몽진하는 어가를 호종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큰 공을 세워 고원군수(高原郡守)로 제수되었으나 왕세자를 강도(江都)로 호종하여 싸우다 순절하였다.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지선정 뜰앞에 자리하고 있는 강고사원정비 입니다. 강고사는 1932년에 보성오씨(寶城吳氏) 문중에서 진사 지선정(止善亭) 오명립(吳名立, 1563∼1633)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1971년에 노봉서원(魯峰書院)에 배향되었던 문헌공(文憲公) 대사헌(大司憲) 규암(圭庵) 송인수( 1487∼1547)와 포천현감(抱川縣監) 북창(北窓) 정렴(鄭廉, 1506∼1549)을 추향하고 매년 음력 3월 15일에 향사하고 있다. 지금의 사당은 1968년에 중건하고 1971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간, 측면 2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인데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중앙에 쌍문과 좌우에 쪽문을 달았으며 강고사(江皐祠)라는 편액을 걸었고 마당 앞에 솟을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현도면 하석리 노봉서원 터를 찾기위해 길을 가는 중에 만난 순흥안씨세천비 입니다. 현도면 하석리 저수지 쪽으로 너머가면 노산리에 순흥안씨 양공공파의 묘역과 함께 재실이 있습니다. 순흥안씨세천(順興安氏世阡)이라는 글이 각자 되어 있습니다. 하석리(아래석천)는 영조후반에 석천 아래쪽이라는 의미로 하석리라 하였고, 본래 문의군 일도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청주군 현도면에 편입되었다. 노봉서원터는 하석리 맨 꼭대기에 있는 마을로 밀양박씨와 이천서씨가 누대로 대성을 이루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