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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통합청주시/서원구(西原區) (281)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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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전리 마을 입구에 논둑에 서 있는 남양인 홍재관의 시혜비입니다. 오위장홍재관시혜비(五衛將洪在寬施惠碑)라고 비석 전면에 각자되어 있습니다 이 곳 죽전리는 남양홍씨 집성촌입니다.홍재관의 시헤비는 홍재관이 1887년부터 10여년간의 개척사업으로 황무지였던 석수정에서 개영치 배다리까지 이르는 광활한 벌판을 옥토로 만들고 경작하여 1898년 부터 부촌이 되어 매년 수확량의 일부를 비축하였다가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고 수해등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도와주니 주위에 칭찬이 자자하여 오위장 홍재관의 시혜를 잊지 않기 위하여 주민들에 의하여 시혜비를 건립하게 되었다.비의 건립시기는 무신년(戊申年,1908년)이라고 비의 뒷면에 음각되여 있다.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된 동학농민군이 폭정에 항거하여 탐관오리들을 몰아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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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서암(歎逝巖)이라는 글씨가 바위에 각자되여 있습니다.탄서(歎逝)라함은 가는 세월을 탄식함이라는 뜻일텐데..... 바위위에 있는 모양이 장수의 발자국 같다 하여 장수발짝이라고도 하는 이칭(異稱)도 있습니다. 바위위의 발모양에 내 발자국도 맞추어 본다... 한천당유고(寒泉堂遺稿)의 내용중 松泉九曲修刻雜記 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1899년에 松泉의 九曲에 바위를 수리하여 글자를 다시 새기게 된 상황에 대해 오재정의 7세손 吳聖秀가 기록한 잡기이다. 八鳳山 남쪽 三岐 서쪽에 구곡이라 이름 붙인 鏤石이 있으니, 進學巖, 釣漁巖, 待月巖, 望仙巖, 偸閒巖, 繼述巖, 濯纓巖, 尙志巖, 歎逝巖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오재정이 그의 큰조카 吳鼎基와 함께 武夷, 石潭의 故事를 추모하고 본받아 새긴 것이다. 그런데,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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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면 죽전리에 있는 대한제국시절 문의군수를 지낸(문의군수(1902~1906) 서병익의 선정비입니다. 서병익의 선정비는 문의면 두모리에 1기,부강면 면사무소내에 1기, 가덕면 인차리에 1기등 곳곳에 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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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면 상삼리 삼기계곡(三岐溪谷)에 있는 조어암(釣魚巖)각자입니다. 후세에 훼손된 각자를 보성오문(寶城吳門)에서 다시 복원하여 놓았습니다. 조어암의 뜻은 낚시질 같이 참고 때를 기다리라는 뜻이다. 한천당유고(寒泉堂遺稿)의 내용중 松泉九曲修刻雜記 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1899년에 松泉의 九曲에 바위를 수리하여 글자를 다시 새기게 된 상황에 대해 오재정의 7세손 吳聖秀가 기록한 잡기이다. 八鳳山 남쪽 三岐 서쪽에 구곡이라 이름 붙인 鏤石이 있으니, 進學巖, 釣漁巖, 待月巖, 望仙巖, 偸閒巖, 繼述巖, 濯纓巖, 尙志巖, 歎逝巖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오재정이 그의 큰조카 吳鼎基와 함께 武夷, 石潭의 故事를 추모하고 본받아 새긴 것이다. 그런데, 오재정이 죽은 지 거의 2백년 가까이 되어 글자가 새겨진 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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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면 상삼리 꽃동네대학교 후문쪽에 자리한 계곡에 써있는 탁영암(濯纓巖)각자입니다. 이곳 현도면은 보성오씨의 집성촌입니다. 달계리와 중삼리쪽으로 보성오씨들과 관련된 많은 문화유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꽃동네 대학교가 개교되면서 계곡에 있던 많은 각자들이 사라졌지만 보성오씨가문의 열심으로 다시 복원(?)하여 놓았습니다. 몇군데의 각자는 찾지를 못했으니 다시 한번 발걸음을 해야 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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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제각은 중삼리에 있으며 계묘년 가을에 건립하였습니다. 증 공조참의 동립공(東立公)과 증 장악원정(掌樂院正)상윤(尙允)등 100여명의 조상을 음력 10월 8일에 제사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지은 건물로 점차 쇠락되어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동립은 효자 경례의 아들로 준립의 형이다. 동립의 자는 여양이며 증 공조참의로 묘는 중삼리 가목동에 있다. 상윤은 자는 신보이며 동립의 맏아들로 선교량 증장악원정(궁중에서 음악을 가르키는 관청)이며 4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후모(後母)에도 정성을 다하여 효행이 지극하였으며 모병(母病)에는 분(糞)을 맛보아 치료하였다.동춘 송준길에게 사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