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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통합청주시/서원구(西原區) (281)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윤영수는 시목리 사람이다. 조실부모하여 배우지 못하여 농사일을 힘써서 집안을 이루었다 효도와 우애하는 행실은 어질고 후덕한 자질이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여러 번 재물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눈것이다. 연고을 어른들에게 잔치를 베푸는 것은 해마다 정한 규칙이니라 제사 지내는 위토와 석물 선조를 위해서 정성을 갖춘것이다. 재물로서 마음에 누를 끼치지 않는것은 편안하게 살아감이아 고을에서 추앙받고 사모함은 길가는 사람들이 덕을 칭찬함이라 연대가 오래되어 글자가 마모됨은 비석을 다시 세운것이다. 선동리는 본래 문의군 이도면의 지역으로 배다리 마을이 있어 주교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동, 시목동, 중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선동리라 하였다. 면사무소, 파출소, 단위 농협, 중학교..
현도면 하석리의 노봉서원터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본 수조입니다. 혹시나 석암사나 노봉서원과 관련된 유물이 아닐까 하고 찍어 보았습니다. 다음에 다시 갈길이 된다면 동네 어른들에게 여쭤봐야겠습니다. 민가 담벼락에 기대여 세월을 담고 있습니다.
현도면 선동리 길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차가 많이 달리는 도로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비석의 전면에는 효열부부안임씨기념비(孝㤠婦扶安林氏記念碑)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부안임씨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아아! 사람이 상부하는 슬픔이 없지 않으나 이 같은 슬픔은 잇지 않으리라. 세상에 과부의 한이 없으리오만 이 같은 한은 없으리라 참으로 슬프도다. 보성오공 달후는 처사 지선정 오명립의 8대손 이다. 그리고 계성의 아들이다. 13세 임오년 봄에 부안임씨가에 장가가서 예를 치르고 가을에 우례하기로 언약하고 중추 8월에 제행가서 자는데 그 친구들이 장난으로 어스름히 잠든 틈을 타서 달후의 안면에 먹그림을 그려놓았다. 공이 홀연 야밤에 깨어서 자기의 얼굴을 보고 기절을 했다가 다시 소생하여서는 ..
죽전리 지석묘는 죽전1리 마을초입에 자리하고 있습니다.옥포초교에서 마을 쪽으로 50여미터 떨어진 밤나무 밑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보호가 시급한 상황입니다. 덮개돌의 평면은 장방형으로 크기는 255*140*135센티이며 암질은 화강암 입니다. 덮개돌밑에 고임돌이 있는것으로 보아 남방식 고인돌로 여겨집니다. 지금은 잡초에 덮혀있고 주위에는 쓰레기등이 널려 있어 이것이 고인돌 인지 뭔지 알수도 없습니다. 마을이 형성되고 돌보는 이 없으니 그냥 커다란 돌덩이로 치부되고 있습니다.고인돌의 윗면에는 구멍이 보이며 구멍은 갈기수법으로 만든 듯 하며 지름이 4~9센티 깊이는 3~6센티정도로 얕습니다. 관리와 보호가 필요합니다. 고인돌은 크게 나눠 지상에 4면을 판석으로 막아 묘실을 설치한 ..
현도면 양지1구 마을초입에 서있는 양지1구 이장을 지낸 오열진의 공적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오열진전이장공적비라고 써 있으며 좌,우 후면에는 그의 공적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오열진(1950-1999)은 우리 양지마을에서 태어나 50년동안 자랑스런 양지사람으로 살았다.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을 뿐 아니라 내 일보다는 남의 일 돕기를 더 좋아했다.특히 동네일 이라면 앞 뒤를 가르지 않고 매달려 성취하였다.1990년부터 1999년 타계할 때까지 10년간 양지1구 마을일을 맡아온 오열진 전이장은 빛나는 공을 많이 세웠다.새마을 사업에 열중해서 마을 구석구석까지 길을 내고 포장했으며 마을회관도 번듯하게 세웠다. 또 1999년 8월에는 이리뛰고 저리뛰며 노력한 결과 이 곳 양음지말과 다락골의 숙원사업이던 버스노..
현도면 양지리 마을입구에 서있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지산오승진거사공적비(智山吳承鎭居士功績碑)라고 각자 되어 있으며 좌우,후면에는 오승진의 공적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공적비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승진 거사는 보성오씨 중추공파의 12대 종손으로 이 곳 양지리 명문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젊어서 교육계에 투신해서 헌신봉사 했으며 후에는 대전에 보현불교 대학원을 개원하여 이를 운영하여 불교교육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오승진 거사는 타향에서 명성을 떨치면서 고향발전에도 남다른 애정과 열정을 쏟아 부었다. 특히 1993년 새마을 사업으로 양지2구 보래에서 부터 이 곳 양지1구 방앗간 앞에 이르는 도로를 개설할 때 오승진 거사는 개인의 토지를 선뜻 희사했다. 지금 우리 동민이 편하게 오가고 있는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