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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통합청주시/서원구(西原區) (281)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현도면 죽전1리 배오개에 위치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시절 구장을 지낸 홍종대의 불망비입니다. 구장 홍종대는 1930년(庚午年)(소화5년)에 현재 죽전 1,2,3리 전체 주민들을 위하여 헌신봉사하고 선행을 베푼것을 잊지않기 위하여 주민들에 의하여 죽전1리 옥포교회입구 논가에 세웠다. 이 곳은 일제강점기시절 면사무소가 있던 동네입니다. 현재의 자리는 도로공사등으로 자리를 이건한 듯 하며 자리를 옮길 때 비석의 비갓등에 파손이 발생하였다. 비석의 전면에는 구장홍공종대불망비(區長洪公鍾大不忘碑)라고 써있으며 후면에는 홍종대의 선행내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경오년(庚午年)10월입니다.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비스듬히 세월을 이고 있습니다. 죽전리는 본래 문의군 이도면의 지역으로서 큰마을(배오개) 뒷..
현도면 하석리(아래석천)는 영조후반에 석천 아래쪽이라는 의미로 하석리라 하였고, 본래 문의군 일도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청주군 현도면에 편입되었다. 노봉(魯峰) : 석천의 제일 위에 있는 마을로 밀양박씨, 이천서씨 누대를 내려오며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대원(大院) : 노봉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죽원 권회라는 효자가 살았다 하며 밀양박씨의 집성촌이다. 석천(石川) : 노봉마을 서쪽을 흐르는 소하천. 성마루(城幹) : 대원 남쪽 금강변에 있는 마을로 옛날 성을 쌓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동권씨, 경주이씨의 집성촌이다. 각회 : 성마루 동쪽에 있으며 금강을 끼고 경치가 수려하여 옛날 풍수들이 모여 놀면서 회를 하였다고 한다. 오가리(五加里) : 성마루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며 ..
고향이 사곡리사지인 충북대학교 야외박물관에 자리하고 있는 석등대석입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곡리 사지는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입니다. 사곡리 절터에 관한 문헌 기록은 없지만, 신라의 명장 김유신(金庾信)[595~673]이 어린 시절 이곳에서 수도하였다는 전설과 함께 중악의 석굴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김유신이 진천에서 태어났다고 하여도 어린 시절부터 경주에서 생활하고 성장하였으므로 이곳을 김유신의 수도처로 보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마애여래입상의 조성 시기로 보아 사곡리 절터는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조선 중기까지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사곡리 절터는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사지마을 서쪽 사자산[속..
현도면 달계리에 있는 보성인 오해진의 육영기념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송운오선생해진육영기념비(松雲吳先生海鎭育英紀念碑) 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오해진으로 부터 교육을 받은 동문들의 이름이 각자되어 있습니다.
현도면 중삼리에 있는 보성인 오대익의 처 안동권씨의 정려문입니다. 오대익의 처 안동권씨는 29세가 되도록 아들을 두지 못하였다.그런데 남편이 기묘년 정초부터 병으로 누워 달이 지나도록 일어나지 못하자 권씨는 남편의 쾌유를 북두칠성에게 빌고 축원하였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남펀은 죽고 말았다.남편이 죽자 안동권씨는 모든 상에 쓰일 수의며 그 밖의 의금을 평상시와 같이 손수 다 꿰매고 손질하여 놓고 남편이 죽은 후 5일이 지나도록 물 한모금도 입에 대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성복(成服)을 하는 날 밝은 모습으로 형제자매들 에게 작별인시를 한 후 목욕하고 새옷으로 갈아 입은 다음 영궤 앞에서 슬픔의 배곡을 마친 다음 약을 마시고 남편을 따라 목숨을 끊으니 같은 날 부군과 합장하였다. 이 사실이 문의현에 보고되자 여..
현도면 중삼리에 위치한 보성인 오연태의 불망비입니다. 오연태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의술로 주위에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였으며 또한 어느때나 어느곳이나 자신의 의술이 필요한곳을 찾아가 많은 사람들을 의술의 혜택을 받을수 있도록 하였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의술을 펼친 공로를 기리기위하여 불망비를 세웠습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1973년입니다 오연태는 1848년(헌종14. 무신년)11월 25일에 출생하였고 호는 추동으로 원래 추모비는 중삼리에서 노호리로 가는 길가 얕은 바위위에 세워져 있었으나 더 많은 이에게 보이고 알리기 위하여 2002년 중삼리 오경례 효자각옆으로 이건하였습니다. 오연태추모비 의술은 장상군(전국시대의 명의로 편작에게 의술의 비방을 전했다고 함)을 근본으로 했고 처방은 기백(황제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