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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소이면 비산리 (1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미타사 오르는길 우측으로 자리하고 있는 조선시대 숙종시절 충주목사를 지낸 이국헌과 엄찬의 공적비입니다. 이 비석으로 말미암아 지명 또한 비선거리라는 명칭이 생겼습니다. 소이면 비산리 비석거리에 있는 충주목사를 지낸 이국헌과 엄찬의 선정비입니다. 두 비석이 나란히 서있습니다. 비석의 크기나 모양등으로 보아 한사람의 솜씨인 듯 합니다. 이국헌이 충주목사로 있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후임으로 충주 목사로 온 사람이 엄찬입니다. 엄찬은 1693년(숙종 19) 충주목사겸충주진관병마첨절제사가 되었다. 같은 해 전임 충주목사 이국헌(李國憲)이 갑자기 죽음을 당하자, 이국헌의 아들이 소장(訴狀)을 올려서 의심스러운 여섯 사람을 가두었다. 그런데 이국헌의 후임으로 온 충주목사 엄찬까지도 꾸짖고 욕보이자, 엄찬이 이국헌..
소이면 비산4리 마을끝에 자리하고 있는 가정집 절인 대경사 마당에 있는 탑입니다. 음성디지털문화대전에 의하면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대경사(大京寺)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이다 대경사 삼층석탑은 음성향교 앞 묘정사 부근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자기 집으로 옮겨놓았다가 6·25전쟁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방치되었던 탑을 50여 년 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 복원하였다. 전체적으로 원형이 매우 훼손된 상태이다. 1매의 지대석 위에 기단석을 올려놓고 그 위에 바로 1층 탑신을 얹었다. 탑신부에는 1, 2층 탑신석과 1, 2, 3층 옥개석(屋蓋石)이 있다. 기단석과 탑신석에는 우주(隅柱)가 모각되었다. 3층 탑신석은 결실되었으며 대부분의 옥개석은 크게 훼손되었다. 대경사는 한국불교태고종 사찰이다. 196..
비산1리 문화생활관 화단에 자리하고 있는 비산1리 마을자랑비 입니다. 문화생활관은 비석마을 경로당과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후 햇살에 발그레한 얼굴같은 마을자랑비가 서있습니다.비석마을 자랑비 입니다 비석마을 이라는 지명은 동네 초입에 자리한 조선시대의 충주목사를 ..
참 행복하다.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생각이 난다.마음속에 게으름 탓이리라 하는 생각은 머릿속에 가득한데 그 게으름을 이겨내려는 행동으로 옮기지를 못했다. 이렇게 또 이국헌이란 이름의 선정비는 세상에 빛을 본다.나의 조그만 행동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준다는 것 그것은 행복이다. 충주목사 이국헌의 선정비입니다.참 아이러니 하게도 엄찬의 공적비와 같이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습니다이국헌과 엄찬은 어찌 보면 서로가 철천지 원수일테니 말입니다. 이국헌이 육방관속에 의해 의문을 죽음을 당한 후 이국헌의 아들은 여러방법으로 육방관속을 경옥에 가두는 이야기가 승정원일기에 나와 있습니다이국헌이 죽은후 충주목사 후임자가 엄찬이지요 엄찬이 충주목사로 부임을 하자 일설에 의하면 이국헌의 아들이 엄..
음애동이라고 쓴 바위의 맞은편 바위에 ‘탁영선탑(濯纓仙榻)’이라는 글씨를 새겨놓았다. 탁영선탑이란 ‘갓끈을 씻는 신선의 걸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음애동 탁영선탑(陰崖洞 濯纓仙榻)’이란 각자의 크기도 각각 가로 15.5㎝, 세로 15.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