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효자각
- 경주김씨
- 선돌
- 청주박물관
- 각연사
- 법주사
- 오블완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충주박물관
- 공주박물관
- 곡산연씨
- 화양동 암각자
- 단지주혈
- 충북의 문화재
- 문경새재
- 문의문화재단지
- 공산성 선정비
- 부도
- 티스토리챌린지
- 밀양박씨
- 상당산성
- 국립청주박물관
- 청풍문화재단지
- 사과과수원
- 부여박물관
- 한독의약박물관
- 사인암
- 보성오씨
- 화양구곡
- 효자문
- Today
- Total
목록신만리 (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신만리 출토 석불입상입니다. 엄정면 신만리 탄방마을에서 발견된 석불입상이다조성시기는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초기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머리가 결실된 석불입상으로 현재 높이만 255센티가 넘는 당당한 장육불상이다. 불상은 어깨가 당당하며 허리가 잘룩하고 육감있게 보이며 그 중심축이 약간 오른쪽으로 쏠려있는 굴신상이다.법의는 통견으로 옷주름이 상체에서는 U자형을 이루고 허리에서는 양다리로 가기 둥글게 옷주름이 흘러내리고 있다. 오른손은 엄지를 들고 중지와 약지로 살짝 법의를 움켜잠은 형상이며 왼손은 여원인을 하고있다. 석불의 대좌는 결실되여 확인할수는 없으나 늘어진 법의자락밑으로 발가락이 보인다.전체적인 모습이 단양보국사지 석불을 연상케하며 조성시기는 통일삼국시대말~고려초기정..
양능길의 묘소는 양여공의 묘에서 산 윗쪽으로 100여미터 위에 자리하고 있다. 양능길의 묘소를 찾은때는 녹음이 우거지고 비는 내리고 묘소에 잡풀은 무성하고하여 묘소를 잘 살펴볼수가 없었다. 양능길은 고려 전기 예성군에 봉해졌던 충주양씨 시조이다. 본관 충주(忠州)이며 탐라국..
양여공은 1378(우왕 4)∼1433(세종 13).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양여공의 묘소는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웃세고개)마을 입구 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신만리 (웃세고개)간판을 보며 진입하면 20여미터앞에 좌측으로 야산이 있다. 야산 앞에는 축사로 사용하던 건물이 퇴락된체 덤불속에 방치되여 있다. 야산입구에 산을 향해있는 작은 오솔길이 눈에 띤다. 양여공의 묘소는 이 오솔길을 따라 2~3분이면 도착할수 있다. 밑에 사진에서 전봇대뒤로 보이는 야산이다. 묘역은 약 20평 정도이며 상석과 문인석이 있으나 오래되어 풍화가 심하다. 봉분은 높이 180㎝, 밑변 길이가 620㎝이며 낮게 주저앉은 상태이다. 묘표석은 대리석으로 심하게 풍화되어 글자를 판독하기 어렵다. 봉분의 우측에 묘비가 있는데, 1435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에서 출토된 고려시대의 동종이다 신만리 일대에는 억정사가 있었다고는 하나 현재는 모두 경작지로 바뀌고 억정대사비가 현재 유존한다.
[정의]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고려 후기 부도. [개설]억정사지(億政寺址)는 신만리 작은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고려시대 규모가 컸던 사찰로 전하고 있다. 또한 우왕, 공양왕 등 여러 국왕들로부터 존경받은 대지국사(大智國師) 찬영(粲英)[1328~1390]이 하산한 사찰이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도 건국 직전 입적한 대지국사 찬영을 크게 신봉하였다.태조는 조선 건국 직후 대지국사의 덕행을 추모하여 시호와 탑호를 내리고, 비문을 찬술하게도 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억정사는 적어도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까지 대찰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만리 부도재는 억정사지로부터 다소 떨어진 족동마을 뒤편으로 형성된 능선에 있었다고 한다. 원래 하대석이 파손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