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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열녀문 (1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순흥안씨 열녀문은 연진행의 부인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936년에 세운 정문이다. 정열부인 순흥안씨는 절충장군 연진행의 부인으로 곡산부원군 연사종의 7대손이다. 부인은 효성이 지극하여 남편을 잘받들었다. 인조14년(1636년)병자호란때 가족과 피난중 다음해 정축년 설날에 제사를 지내는 중 적장이 침입하여 남편이 위급한 것을 보고 남편과 같이 적과 싸우다 적장에 칼에 죽었다. 적장은 조선여성의 열강에 감동하여 유혈로 벽에다 "열녀"라고 쓰고서 물러갔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정열부인을 명하고 정문을 세웠으나 오랜세월이 흐르는 동안 정문이 쓰러지고 현판만 연씨종중에서 보전하다가 1986년에 후손들이 뜻을 모아 문암리에 건립하였다. 정려앞 처머에는 열녀문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정려안에는 1987년에 연윤..
가덕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인조(1638)가 보은을 가기 위해 이 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비록 좋은 이불과 베개는 아니었으나 잠자리가 매우 편했다. 따라서 인조는 노정에 따른 피로를 완전히 잊을 수 있었다. 이른 아침, 인조가 산세를 자세히 살펴보고는, "이 곳의 산세가 매우 부..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송순의 처 문화유씨 열녀문이다. 송순의 처 문화유씨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네 살 난 외아들을 두었는데, 남편을 청나라 오랑캐에게 잃고 쫓기는 몸이 되자 어린 외아들을 몸종에게 맡기며 가문의 혈통을 잇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 절사(節死)하였다. 이에 문화유씨의 절개와 부덕을 기리고자 1640년(인조 18) 정려가 내려졌고, 1701년(숙종 27) 현판을 하사받아 보관하다 1954년 강음송씨 종중에서 열녀문을 건립하였다. 충주시 대소원면 남쪽에 위치한 매현리의 팔송산 아래 장성백이마을에 위치한다. 장성백이마을은 매산과 수현이 갈라지는 분기점에 있다. 1954년 건립 이후 시멘트 사각기둥 위에 재건을 하여 초기에 건립된 모습을..
정선전씨 효부문(旌善全氏 孝婦門)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효부문(孝婦門)’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사방을 홍살로 막고 그 주위를 다시 시멘트 담장으로 둘렀다. 출입구는 정면에 만들어 놓았으며, 내부 현판에는 ‘효부복호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경연..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 살았던 열녀. 본관은 장흥(長興). 고려시대 대사헌(大司憲) 임헌의 딸이며, 박순(朴淳)의 처이다. 1402년(태종 2) 함흥차사로 함주(咸州)로 내려간 남편 박순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매일 목욕재개하고 하늘에 기원하였으나, 끝내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