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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정려문 (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열녀문으로, 병자호란 때 절개를 지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언양김씨를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병자호란 때 청나라 병사들에게 붙잡혀 치욕을 당하기보다는 절개를 지켜 스스로 목숨을 끊기를 선택한 언양김씨를 기려 세운 열녀문이다.송용리 마애불 뒷쪽에 자리하고 있다. 언양김씨는 장응헌(張應軒)의 아내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족과 함께 피난을 하려고 하였다.그러나 갑자기 청나라 병사들이 쳐들어오자 남편으로 하여금 늙은 시아버지와 어린 두 자식을 데리고 산으로 피신하게 하고 자신은 청나라 병사들을 유인하며 반대 방향으로 피신하였다. 예양리 앞강까지 쫓겨온 김씨는 청나라 병사들을 크게 꾸짖고는 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청나라 장수..
이 정려문(旌閭門)은 조선 선조(宣祖)때부터 영조(英祖)때 까지(1574∼1733) 덕수이씨가문에서 배출한 효자(孝子) 6인과 효부(孝婦) 2인에 대한 효행을 기리는 정려를 영조 40년(1764)에 한곳에 모아 건립한 것이다. 선조 7년(1574) 지극한 효도로 신령이 도와 꿩이 집으로 날아들어 부친을 봉양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송순의 처 문화유씨 열녀문이다. 송순의 처 문화유씨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네 살 난 외아들을 두었는데, 남편을 청나라 오랑캐에게 잃고 쫓기는 몸이 되자 어린 외아들을 몸종에게 맡기며 가문의 혈통을 잇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 절사(節死)하였다. 이에 문화유씨의 절개와 부덕을 기리고자 1640년(인조 18) 정려가 내려졌고, 1701년(숙종 27) 현판을 하사받아 보관하다 1954년 강음송씨 종중에서 열녀문을 건립하였다. 충주시 대소원면 남쪽에 위치한 매현리의 팔송산 아래 장성백이마을에 위치한다. 장성백이마을은 매산과 수현이 갈라지는 분기점에 있다. 1954년 건립 이후 시멘트 사각기둥 위에 재건을 하여 초기에 건립된 모습을..
이 정려각은 열녀 이근립(李根立)의 처 백천호씨(白川扈氏) 호소사의 정려로 세운 것이다. 조선 인조 14년(1636) 연풍고을 관리로 있던 남편이 군량미를 거두어 강화도로 떠나게 되었다. 그 해 겨울에 호란이 일어나 남한산성이 함락되고, 강도(강화도)조차 적의 수중에 들어가 세자(世子)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