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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영규대사(靈圭大師)[?~1592]의 공적을 기리는 전적비. 임진왜란 때 육상 전투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청주성 전투에서 승군(僧軍)을 이끌었던 영규대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4년에 세운 전적비(戰蹟碑)이다. 청주시 내 중앙공원(中央公園) 동쪽 출입구 오른쪽 화단에 조헌(趙憲)[1544~1592] 전장기적비(戰場紀蹟碑) 옆에 있다. 높이 224㎝, 폭 82㎝, 두께 39㎝의 오석(烏石)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철제 보호난간을 둘렀다. 비의 제목은 “義僧將騎虛堂靈圭大師戰場紀蹟碑(의승장기허당영규대사전장기적비)”이다. 비문은 정인보(鄭寅普)가 짓고, 김응현(金膺顯)이 글씨와 전서(篆書)의 비 제목을 썼다. 비문의 내용은 영규대사가 임진왜란 때 800여명의 승병을..
조선 고종(高宗) 때 흥선대원군이 집정하면서 1866년(고종 3)에 있었던 병인양요와 1871년에 있었던 신미양요를 통해 서양세력을 격퇴한 후 그 전승을 기념하고 척화를 강조하기 위해 1871년 4월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요충지에 척화비를 세웠다. 청주 척화비도 이때 세운 것이다.상당구 남문로 2가 중앙공원(中央公園) 북쪽 출입구 안의 왼쪽 화단에 동향으로 서 있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하여 세운 척화비는 그 후 1882년 임오군란으로 청군이 개입하여 흥선대원군을 청나라에 납치해 가고 고종이 개화정책을 추진하자 일본공사의 요구로 모두 철거되었다. 청주의 척화비도 이때에 철거되었는데 지금의 비석은 1976년 2월 20일 정찬일(鄭燦日)이 상당구 석교동 신충구(申忠求)의 집 앞 하수구의 뚜껑으로 있던 것을 발..
청주시 중앙공원 한쪽에 옛청주읍성이 복원되여있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 청주 역사 정체성의 상징 청주읍성이 복원됐다. 복원된 성벽 구간은 중앙공원 서측 출입구에서 YMCA 사이 35m로, 2011년 청주시가 (재)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에 의뢰 발굴조사를 벌여 성벽 위치와 폭이 확인된 곳이다..
김효성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행원(行源),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아버지는 양양부사(襄陽府使) 김수연(金秀淵)이며, 어머니는 좌승지 김희룡(金希龍)의 딸이다. 1613년(광해군 5)에 생원에 합격하였으나, 1615년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은 정조(鄭造)·윤인(尹訒)·이위경(李..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中央公園) 내에 있는 은행나무. 중앙공원(中央公園) 내에 있는 은행나무인데, 압각수라는 이름은 잎의 모양이 오리류의 발가락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과 나무뿌리가 물오리의 발처럼 발가락 사이가 붙어 있어 생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