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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화양구곡 암각자 (10)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청천면 화양구곡으로 불리우는 화양동 계곡에는 바위에 이 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많은 암각자가 있습니다. 특히나 4곡인 금사담과 5곡인 첨성대 9곡인 파천 주위로는 많은 암각자가 있습니다. 남정용의 각자는 암서재 옆에 새겨져 있습니다. 숭정기원후오을해(崇禎紀元後五乙亥)는 1875년입니다. 이곳에 위치한 만동묘에 만동묘 중건편액을 가지고 이 곳을 방문한 어필봉안사 남정용이 이 곳을 방문하여 각자한 것입니다. 암서재옆에 있는 바위에 만동묘중건편액어필봉안사신남정룡숭정기원후오을해유월삼일(萬東廟重建扁額御筆奉安使臣南廷龍崇禎紀元後五乙亥六月三日)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청주박물관 만동묘중수기(淸州博物館 萬東廟重修記) (tistory.com) 청주박물관 만동묘중수기(淸州博物館 萬東廟重修記) 국립청주박물관에 있는 화양동에 소..
화양구곡 제 4곡인 금사담에 있는 암서재옆에 있는 바위에 각자된 정만석의 한시입니다. 1807년 공충도 관찰사 시절 이곳을 찾았다가 한시를 각자한 것입니다. 금사담 주위로는 많은 암각자들이 있습니다.화양구곡내에 새겨진 많은 암각자를 찾는것도 시간가는줄 모르는 재미가 있습니다. 환구건정처 (寰區乾淨處) - 천지사이에 편한 곳이 암옥양삼간 (巖屋兩三間) - 바위 집 두 세칸이구나 서수하증식 (逝水何曽息) - 흐르는 물은 어이 쉼이 있으리 고산불가반 (高山不可攀) - 높은 산도 붙잡아 둘 수 없거늘 정만석鄭晩錫은 1758년(영조 34) ~ 1834년(순조 34)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호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성보(成甫), 호는 과재(過齋). 정하경(鄭夏卿)의 증..
화양구곡의 제9곡인 파곶에는 많은 암각자들이 있습니다. 특히나 송시열의 서재로 쓰였던 암서재와 함께 제5곡인 첨성대와 접하고 있는 계곡물가 그리고 파곶에는 이 곳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암벽에 각자되어 있습니다. 시간을 가지고 그들의 이름과 함께 암각자를 찾는 재미도 좋습니다.제1곡인 경천벽서 부터 제9곡인 파곶까지의 명명된 각자를 찾는것도 좋습니다. 파곶가의 암석에 옅게 새겨진 각자들입니다.
원세현元世顯은 원주인으로 조선후기의 무관입니다. 순조27년(1827년)정해년에 증광시에 합격했습니다.1856년 전라좌도수군 절도사를 지냈으며 1857년에는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냈습니다.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낼 때인 기미년(己未年.1859년) 봄에 아들인 장한長漢과 지인 원석일元錫一과 함께 이곳을 찾아 이름을 각자한것입니다. 화양구곡의 제9곡인 파천가의 암벽에 이름을 각자 하였습니다.각자일은 기미己未년(1859년) 봄입니다. 승정원일기 2597책 (탈초본 124책) 철종 8년 11월 20일 정유 27/35 기사 1857년 咸豊(淸/文宗) 7년〈○〉 再政。 兵批啓曰, 忠淸兵使, 今當差出, 而擬望之人乏少, 他道水使竝擬, 何如? 傳曰, 允。 以徐珩淳爲都摠經歷, 朴儀漢爲文兼, 元世顯爲忠淸兵使, 金錫範爲文..
화양구곡의 제5곡인 첨성대 아래 냇가에 암벽에 새겨진 암각자입니다. 주위로는 비례부동 과 만절필동 등 송시열의 대명존숭을 나타내는 여러 암각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청나라를 인정하지 못하고 명나라에 대한 모화사상이 화양동 계곡안에 가득합니다. 대명천지大明天地, 조선의 땅은 위대한 명나라 것이고 숭정일월崇禎日月, 조선의 해와 달 역시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의 것이로다. 송시열의 사대적인 숭명(崇明), 존숭(尊崇) 사상이 고스란히 새겨진 글씨입니다.此八字陪臣宋時烈嘗書與人者也 正宣於此山中謹模以勒(차팔자배신송시열상서여인자야 정선어차산중근모이륵) 현실에서의 시선으로는 참 이해가 되지않는 각자이지만 그 시대의 사회상과 함께 당쟁으로 얼룩졌던 조선의 아픔을 보는 듯 합니다.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으로 끝나는 것..
괴산군 청천면 화양계곡 첨성대 아래의 냇가의 암벽에 새겨진 명나라의종의 어필로 송시열에 의하여 각자되었습니다.비례부동 (非禮不動)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의 어필로,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다' 라는 의미 이다.비례부동의 오른쪽에 숭정황제어필崇禎皇帝御筆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화양동은 송시열의 모든것을 압축해 놓은 곳입니다. 우암이 괴산 화양동에 '비례부동'을 새긴 까닭은 - 충북과 나의 연결고리 충북일보 (inews365.com) 우암이 괴산 화양동에 '비례부동'을 새긴 까닭은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전라도 정읍에서 숙종의 사약을 받기 직전 수제자 권상하(權尙夏, 1641∼1721)에게 서면으로 유지를 내려 명나라 신종(神宗)과 의종(毅宗, 崇禎帝)의 사당을 짓고 제 w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