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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동 수름재(酒城洞 수름재) 본문

통합청주시/청원구(淸原區)

주성동 수름재(酒城洞 수름재)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5. 6. 9. 15:32

 

충주에서 청주로 접어드는 길에 있는 고개이다.

말이 고개이지 지금은 어찌보면 그 어디에서도 고개의 흔적을 찾을수도 없다.

그나마 수름재라고 써있는 돌기둥만이 이 곳이 수름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뿐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지고있다.

 

 


수름재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주성동에 있었던 고개의 이름이다.


수름재의 명칭은 ‘수름’과 ‘재’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수름의 뜻을 밝히면 되지만 그 어원이 분명하지 않아 이 고개의 유래를 밝히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수름’에 대한 몇 가지의 어원설을 전하고자 한다.

첫째는 술(酒)과 관련하여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술을 팔고 숙소까지 제공하던 주막이 있었기 때문에 주어진 이름으로 수름재는 ‘술을 파는 고개’ 정도로 해석된다.

둘째는 ‘수리(독수리)’와 연계하여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 고개에 독수리가 많이 모여들어 서식하였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셋째는 ‘수름’을 봉우리, 꼭대기를 뜻하는 ‘술’과 관련하여 이해하려는 것이다. ‘술’은 본래 봉우리 또는 꼭대기의 뜻이나 지명의 선행요소로는 ‘높은’이라는 의미를 띠어 술재는 ‘높은 고개’로 해석된다.

또 ‘수름’은 ‘쉬는’의 변형으로 보려는 것이다. ‘쉬는’은 ‘쉬눔’, ‘쉬늠’으로 나타나고 이들은 수름재의 ‘수름’과 어형이 비슷하다. 따라서 ‘수름재’는 높고 험해서 쉬어 가는 고개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또 다른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수름재’는 인근의 열두 마을을 통칭하는 지역명으로 현 주성동에서 청원구 내수읍 묵방리로 가는 고갯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즉, 임진왜란 때에 한산이씨 입향조인 이도가 아들 이덕흡(李德洽), 조카 이덕제(德濟)와 함께 그 고갯길에서 참살 당한 후 한산이씨의 원수의 고개라는 뜻의 ‘수리재[讐李峴]’에서 ‘술름재’ 또는 ‘술재’로 변환되었다 하며, 술재를 한자로 주성(酒城)이라 표기했다는 것이다.


어떠한 확실한 근거가 없는 구전되여 내려오는 이야기속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시대적인 상황이 같이 녹아있다.

작은 지명하나에도 숱한 세월의 흔적과 한산이씨들의 아픔이 있으니 지명하나하나 살펴봄도 괜찮은 역사공부 인듯 하다.




 

 

수름재 주위에는 한산이씨들의 자취가 많이 남아있다.다른 곳에서 이주하여 뿌리를 내린 대표적인 토박이 성씨는 한산 이씨를 들 수 있다. 한산 이씨가 청주에 세거하기 시작한 것은 이도(李濤)가 서울에서 청주로 이주한 선조 9년(1576)부터로, 특히 그의 아들인 이덕수(李德洙)에 의하여 청주지역의 명문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산이씨의 세거지는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의 수름재마을과 그 주변으로, 지금도 집성촌을 이루고 집단 거주하고 있다. 그 역사가 족히 400년이 넘는다. 수름재는 전국의 대표적인 한산 이씨 세거지 8개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한산이씨가 번성한 집성촌이다. 수름재 동쪽 강당말에는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영정을 봉안한 목은영당(牧隱影堂)과 주성강당(酒城講堂)이 있어 한산 이씨의 정신적 기둥역할을 하고 있다. 묘역은 청원구 내수읍 묵방리에 있다.


[수름재에서 가까운 곳에 목은 이색선생의 영정을 모신 목은영당과 주성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청원구 내수읍 묵방리에 있는 이덕수로 대표되는 한산이씨의 묘역이다,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 관리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