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리사지삼층석탑(南下里寺址三層石塔) :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한 4.4m×3.4m×1.7m 크기의 암반 위에 한 면의 길이 108cm, 높이 35cm의 네모난 대석(臺石)을 놓고 높이 165cm의 3층으로 쌓은 석탑이다. 이는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9세기 말∼10세기 초]에 조성되었으며, 1984년 12월 31일에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41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대석의 윗면이나 옆면은 물론 탑신(塔身)에는 우주(隅柱)와 탱주(幀柱) 등 아무런 조식이 없어 단조로움을 주고 있다. 1층 탑신의 한 모서리 위에는 암석에서 쪼아낸 흔적이 남아있고, 1층 탑신에 비해 2층 탑신의 높이가 급격히 낮아졌다. 탑신과 옥개석(屋蓋石)은 각각 별도의 돌로 조성되었는데, 2층 탑신만은 1층 옥개석과 하나의 돌로 되어 있어 고려시대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옥개석 아래 옥개받침은 모두 3단으로 되어 있으나 각 층의 윗면에는 탑신받침이 없다. 3층 옥개석 위의 상륜부에는 노반(露盤)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데 지름 9.5m의 찰주공이 3층 탑신에 이르기까지 관통되어 있다. 마을 주민들의 전언에 따르면, 흉년이 드는 경우 이 노반 방향을 다르게 놓아서 비 오기를 기원하였고 또 실제로 비가 온 경우도 있었다 한다. 옛 문헌에 전하는 것이 없으나,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1942)에 “남하리 염곡(廉谷) 북서 약 100간 되는 계곡에 석탑이 있는데, 3층으로 완전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같이 자연암반에 올린 석탑의 기단 양식은 신라 하대인 9세기에 건립된 경주 남산 용장사곡삼층석탑(茸長寺谷三層石塔), 남산리동삼층석탑(南山里東三層石塔), 서악리삼층석탑(西岳里三層石塔)에서 양식적 근원을 찾을 수 있어 신라 하대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탑의 건립 위치가 넓은 시계(視界)가 가능한 높은 지대이거나 높은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하고 3m 이내의 높이로 건립한 양식 등은 고려시대에서도 찾을 수 있어 고려 초기에 조성되지 않았나 여겨지기도 한다. 1994년에 충청대학박물관의 지표조사 결과, 남하리사지3층석탑은 고려시대 인근 염곡소에서 많은 불을 다루면서 동남쪽의 높아지는 화기를 누르고 마을의 화재와 주민들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세웠던 일종의 비보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런 추정은 신라 하대에 확립된 산천비보(山川裨補) 사상에 의하여 고려시대에 많은 지역에 석탑을 세웠던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