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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면 비산리 충주목사엄찬공적비(蘇伊面 碑山里 忠州牧使嚴纘功績碑) 본문
엄찬(嚴纘)은 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입니다.
비석은 일체형으로 비석의 크기등에 비해 각자된 글씨는 작고 조금은 비석의 당당함이 없습니다.
비석의 형태등으로 보아 두 비석은 한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느낌입니다
음성군지에 의하면 엄찬공적비외에 또 다른 비석은 고종조의 이채청 또는 충주목사를 지낸 이채의 비석이라고 하나
엄찬과의 연관성 내지는 시대가 너무 떨어진 느낌이 듭니다. 다시 한번 자세히 동시대의 목사를 중심으로 다시 연구를 해봐야 할거 같습니다
궁금하던차 시간을 내어 다시 다녀왔습니다 동시대에 엄찬의 전임자였던 충주목사 이국헌의 비석입니다.
1693년(숙종 19) 충주목사겸충주진관병마첨절제사가 되었다. 같은 해 전임 충주목사 이국헌(李國憲)이 갑자기 죽음을 당하자, 이국헌의 아들이 소장(訴狀)을 올려서 의심스러운 여섯 사람을 가두었다. 그런데 이국헌의 후임으로 온 충주목사 엄찬까지도 꾸짖고 욕보이자, 엄찬이 이국헌의 아들을 곤장으로 때리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엄찬은 충주목사에서 체임되고, 이 일로 경연(經筵)에서 논의가 있었는데 이현일(李玄逸)이 엄찬의 치적을 두둔하여 주었으므로 그대로 유임되었다. 1702년(숙종 28) 청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엄찬은 청주목사시절 사간원에 의해 탄핵을 받습니다.
1702년 1월 18일 사간원(司諫院)에서 탄핵하기를 "청주 목사(淸州 牧使) 엄찬(嚴纘)은 바야흐로 국상(國喪)인 국휼(國恤) 초(初)를 당하였는데도 편안하게 관아의 객사(客舍)에서 잠을 자고 곡을 할 자리에 몸소 가지 못하고 그 쪽을 향하여 애곡(哀哭)하는 망곡(望哭)할 때에 많이 빠졌으며, 그 고을 안에는 도살(屠殺)을 전처럼 낭자하게 하고, 도내(道內)의 과거에 응시하는 유생들이 본주(本州)에 이르러서 빽빽하게 많이 모여 술과 음악을 함께 벌이고 있으니 청컨대 관원의 명부인 사판(仕板)에서 삭제하소서."하니 숙종이 그대로 따랐다.
두개의 비석중 좌측에 자리한것이 엄찬의 공적비입니다.
1694년(숙종 20) 충주 지역 사람들이 세운 목사엄후찬청덕휼민선정비(牧使嚴侯纘淸德恤民善政碑)가 충청북도 충주시 달천동 달천교 옆에 세워져 있다.
[달천대교옆에 자리한 엄찬의 공적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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